경쟁력이 있어야 고용보장도 있다
경쟁력이 있어야 고용보장도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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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곧 한 회사에서 근무하다 정년을 맞는다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요즘처럼 변화무쌍한 시대에 정년으로 퇴직하는 것 자체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예전에는 일반적으로 40대 후반부터 50대에 들어서야 퇴직을 걱정해야 했다면 지금은 30대부터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할 판이다. ‘사오정’(45세쯤 되면 정년퇴직)에 이어 ‘삼팔선’(38세에 회사에서 퇴출), ‘삼초땡’(30대 초반에 명예퇴직)으로 신조어가 변할 정도로 직장을 떠나는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심지어 직장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는 고용빙하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삼일절’(31세가 되면 절망한다) 같은 씁쓸한 세태 반영 단어들도 등장했다. 수많은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다하는가 하면, 막상 직장을 구한 샐러리맨들도 언제 쫓겨나지 몰라 하루하루를 노심초사하는 것이 작금의 서글픈 현실이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에서 고용불안을 느끼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다면 어떨까? 여러 기업이 몰려있는 울산지역에도 이처럼 축복받은 근로자들이 적지 않다. 그 중 현대차 근로자들은 고용의 안전지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바로 조합원 고용을 보장하는 노사합의가 명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근로자들은 우리나라 대표 기업의 직원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다른 회사 근로자들보다 안정적인 근무여건을 누리고 있다. 현대차 노사의 고용보장 합의서는 지난 2000년 첫 체결 이후 수차례 새로운 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마련해 조합원들의 고용을 강화했다.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도 총고용 보장 합의서 체결을 요구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같은 명문화된 합의서가 온전하게 고용보장을 담보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조합원들의 고용보장을 원한다면 접근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바로 회사 경쟁력을 높이는 것만이 완벽하게 고용을 확보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회사 경쟁력과 고용보장의 상관관계는 가까운 현대중공업 사태로 실감할 수 있다. 조선업 세계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던 현대중공업은 노사관계 또한 20년 가까이 무분규를 이어오며 직원들의 고용을 안정시켜 왔다. 그러나 조선업 경기 침체로 회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자 수천명의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회사 경쟁력이 곧 종업원의 고용과 연결되는 단적인 케이스다.

특히 고용보장 노사 합의서가 무조건 법적 보호를 받는 것도 아니다. 지난 2014년 4월 대법원은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포레시아배기컨트롤시스템의 정리해고자 19명이 제기한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회사가 노조와의 단체교섭에서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약속했다면 정리해고는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언뜻 보기엔 노사가 고용보장에 합의할 경우 일체의 해고가 불가능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대법원은 “노사협약 이후 사정이 현저하게 변경된 경우에는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고 예외를 뒀다. 즉 고용보장을 문서로 합의하더라도 회사가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을 경우 합의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얘기다.

현대차가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성장하다 보니 직원들이 고용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다. 이처럼 회사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야말로 고용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보증서다. 최근 현대차 영업실적이 지속적으로 나빠지면서 경영악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세계 1위 현대중공업이 그랬듯 현대차도 큰 위기에 처할지 모를 일이다. 어떻게든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려서 위기를 탈출해야 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 고용보장 합의서 체결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확실한 고용보장책인 회사 경쟁력 올리기를 최우선순위에 둬야 할 것이다.

<이주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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