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봄의 전령사 ‘물닭’
겨울·봄의 전령사 ‘물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1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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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닭의 겨울나기 중심지인 태화강 하구는 겨울과 봄을 제일먼저 알리는 전령지이다. 물닭이 겨울과 봄의 전령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물닭은 겨울철새인지라 겨울의 문턱에 찾아왔다가 봄이 시작될 무렵 떠나가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서식지인 북쪽이 너무 추워 남으로 오고, 봄에는 검은 색 옷을 입어 봄볕이 너무 더워 북으로 간다. 태화강에 물닭이 보이면 겨울이 기세를 떨쳐가고, 보이지 않으면 봄이 무르익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고 봄이면 말없이 떠나는 물닭을 전령사라고 부른다.

그런데 물닭의 개체 수에 변화가 생겼다. 재작년 겨울만 하더라도 태화강 하구 기수역에는 그야말로 물 반 물닭 반이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 겨울에 태화강을 찾은 물닭의 개체 수는 의외로 적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조류 호사가는 기온변화,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단언하지만 필자는 그 주범이 지난해 10월 5일 찾아온 제18호 태풍 ‘차바’라고 본다. 물닭이 기수역(汽水域)에 한사코 모여드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먹이 때문이다. 기수역의 바닷돌에는 해초와 수초의 포자가 같이 붙어 자라나 해조류(海藻類=바다조류, 수초)와 수조류(水藻類=민물조류)가 풍부하다. 이를 주식으로 하는 물닭은 당연히 좋은 먹잇감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물닭은 해초와 수조류가 풍부한 하구·하천·저수지·호수와 같은 서식지를 좋아한다. 조사·관찰한 결과 재작년에 비해 물닭의 개체 수가 급감한 주된 원인은 총 270mm의 강수량으로 울산에 큰 피해를 남긴 태풍 ‘차바’ 였다. 태화강의 범람은 많은 수재민을 남기면서 물닭의 먹이인 수초의 포자마저 말끔히 청소하고 지나갔다. 먹이의 고갈은 물닭의 주검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월 30일 태화강 하구에서 가까운 도로에서 물닭 5마리가 로드킬(road kill·동물들이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치어죽는 것)을 당했다. 이 사실은 큰부리까마귀가 로드킬 당한 물닭의 사체를 먹고 있는 것을 출근길 시민이 발견, 관계기관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고병원성 AI 청정지역을 사수하고 있는 울산시 관계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을 멈추지 않았다. 다행히 결과는 AI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지만 물닭이 먹이 부족으로 교통사고를 만나 죽은 사실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사고가 난 길은 부두와 연결된 자동차도로로 평소에도 운송차량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수송차량 중에는 곡물운반차량도 있어 운행 중에 차체가 흔들리면서 도로에 곡물이 떨어지는 일이 잦다. 공교롭게도 이 도로에 가까운 곳이 매년 물닭이 겨울을 편안하게 보내는 먹잇감이 풍부한 기수역이다. 울산의 올해 겨울은 물닭 모두에게 낯설었을 것이다. 배고픔에 지친 물닭은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태화강을 벗어나 자동차도로로 내닫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물닭은 즐겨 먹던 파래가 지난 태풍 때 쓸려 내려가는 등 먹잇감이 부족해지자 떨어진 낙곡을 주워 먹으려고 강에서 나왔다가 질주하는 차량에 부딪혀 변을 당했다. 물닭은 뭍에서는 걸음걸이가 빠르지 않다. 이번에 로드킬 당한 물닭도 곡물운반차량이 떨어뜨린 곡물을 주워 먹으려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질주하는 차량을 미처 피하지 못해 바퀴에 치어 죽은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이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할 놈 없다’는 속담이나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고파 울고요…’라는 민요는 우리에게 음식과 먹이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지난 2월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유강리 형산강 상류에서 먹잇감 사냥에 성공한 물닭 한마리가 힘찬 날갯짓으로 수면 위를 달리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필자는 태화강에서 수년째 물닭을 조사·관찰하고 있지만 물닭이 물고기를 사냥하는 것을 아직껏 한 번도 관찰하지 못했기에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물닭은 잠수성 조류지만 부리의 크기와 모양 그리고 잠수능력에서 물고기를 능숙하게 잡는 새로 진화하지는 못했다. 물닭의 부리는 마치 닭같이 짧아 먹이를 쪼아 먹기에는 적당하지만 가마우지같이 부리가 길거나 예리하지는 않다. 그러나 가끔 작은 물고기를 잡아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3월 20일 삼호교 아래 연안구역 친환경 다목적광장 앞 태화강가에서 한 무리의 물닭을 관찰했다. 그들은 궁거랑 무거 생태하천으로 떠내려 오는 부유물을 먼저 먹기 위해 붉은부리갈매기들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닭은 검정색 온몸, 흰색 부리와 이마가 뚜렷하고, 까만 비닐봉지가 물에 동동 떠다니는 것 같다. 또한 알락오리와 곧잘 이웃하기 때문에 알락오리가 있는 곳에서는 십중팔구 물닭이 관찰된다. 이러한 어울림으로 물닭과 알락오리가 친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알락오리가 물닭에게 기생하는 것이다. 물닭이 숨을 참아가며 잠수하여 해초, 수초를 부리로 물고 수면으로 올라와 잠시 숨비소리로 숨을 고를 찰나에 알락오리는 이때다 하고 먹이를 날쌔게 낚아챈다. 둘은 먹이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영랑은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라고 읊었다. 난 ‘물닭이 쪼로록 쪼로록 날아가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찾은 기쁨을 만끽할 테요’라고 말하리라.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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