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은 내가 손해 볼 때
통합은 내가 손해 볼 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1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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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승복할 수 없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과연 결과에 어떤 이의도 달지 말아야 하나? 잡범도 3심인데 약 2천500만 유권자가 투표한 대통령을 재판관 8명이 3개월 심의로 단 한 번에 파면하는 시스템이 옳은가?

헌법재판소 제도를 처음 도입한 나라 오스트리아에서는 연방하원에서 탄핵안을 발의하면 국민투표로 파면을 결정짓는다. 헌재는 독일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약 44개 나라에서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헌재 판결에 대한 태도는 성숙한 자유민주주의와 실질적 내용성이 결핍된 의사민주주의(pseudo-democracy)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면서 독배를 마신 것처럼 실정법이니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정작 이런 말을 한 적이 없고 법원이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이 믿는 진리와 신념 때문에 죽음을 택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재판관 전원이 만장일치로 내린 판결에 대해 무조건 이의를 달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다수를 이룬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기에 다수결로 내린 결정은 무조건 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분명히 민주주의의 근간은 다수결이다. 그렇다고 이의도 질문도 제기할 수 없다면 자유민주주의는 더 큰 위험에 빠져들 수 있다. 이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의 아들이었다. 잦은 전쟁과 과중한 세금으로 민중들은 등골이 휘어졌지만 귀족과 성직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 덕분에 향락에 빠져 있었다. 굶주림에 지친 파리의 민중들은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거리로 뛰쳐나와 루이 16세 왕의 목을 베었다. 혁명이 젊은 나폴레옹 장군을 제1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만들었으나, 성이 차지 않은 그는 국민투표를 처음 도입하여 스스로 황제로 즉위했다가 얼마 안 가서 유배를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1933년 수상에 임명된 직후 히틀러는 다수결을 악용하여 대통령과 수상을 겸한 총통이 되었다. 히틀러가 자신의 친위대와 돌격대를 앞세워 반대파를 폭력으로 억압했지만 당시 법정은 국민 다수의 여론에 편승하여 독재를 향한 선거와 국민투표 등 의사민주주의적 절차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했다. 결국 독일은 패전의 쓴맛을 겪고 난 뒤에야 집단적 군중심리의 오류를 깨닫게 되었다.

다수결과 다수여론이 언제나 최고의 선은 아니라는 것은 역사적 교훈이다. 이 교훈은 어떤 경우에도 소수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장치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임을 가르쳐준다. 우리나라는 탄핵을 몰고 온 시민적 데모가 폭력적이지 않고 질서정연했던 덕분에 전 세계적 찬사를 받았다. 항의할 수 있는 소수의 자유가 보장되었기에 시작이 가능했던 데모였다. 마찬가지로 헌재의 파면 결정에 대해서도 소수의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법 집행을 이행하지 않을 자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자의 의식까지 강제할 수는 없다. 국민의 절대다수의 정서에 어긋나는 표현방식과 행동양식을 보이더라도 대통령 역시 공인이자 사인으로서 소수 의사로 묵인해 주는 것이 한 단계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승자의 축제가 있으면 패자의 초상집도 있기 마련이다. 헌재를 통해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쿠데타가 아닌 법으로 파면시킬 수 있는 자유민주국가임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두가 더는 갈등과 분열이 아닌 통합을 열망하고 있다. 통합과 소통은 구호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대를 설득시키려는 대화는 소통이 아니다. 역지사지의 시각으로 서로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소통이다. 통합은 설득과 흡수가 아니다. 통합은 내가 손해를 볼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현 정권의 불행은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자인 이명박 후보 측이 패자인 친박(親朴)에 양보가 아니라 승자독식의 태도로 공천 불이익을 준 것에서 비롯되었다. 나중에 승자가 된 친박 역시 친이(親李)에 독식으로 앙갚음함으로써 반목을 거듭한 끝에 결국 분당의 수순을 밟았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친문(親文)과 비문(非文)이 계파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정당 간의 대립과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일당독재에 대한 견제장치로서 작동된다. 세계 어느 정당에도 계파가 있는데 이는 자연적 현상이다. 독재정당에도 계파는 있다.

그러나 정치는 계파가 서로 타협하는 예술이다. 정치는 제압이 아니라 타협이다. 통합은 타협으로 이루어지고 타협은 내가 먼저 양보할 수 있는 성숙한 정치인만이 할 수 있다. 의원은 선수(選數)가 많다고 해서 성숙한 정치인은 아니다. 오히려 노욕(老慾)에 찬 사람일 수 있다. 성숙한 정치인에게는 통합하는 기술과 지혜가 있다.

난파당한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청렴하고 의욕이 분출하는 인물이 아니라 노회한 경험으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결단력을 갖춘 지혜로운 자라야 한다. 혈육 같은 친소관계도 베어낼 수 있는 무자비한 자질을 갖춘 성숙한 정치인이어야 한다.

<임현철 울산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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