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자해지(結者解之)
결자해지(結者解之)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0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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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매듭을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것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결자해지는 책임소재에 대한 이야기다. 장기화의 늪에 빠진 지난해 임단협과 최근 열린 임시주총에서 폭력사태까지 벌였던 현대중공업 노사의 모습을 보면서 이 해묵은 고사성어가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한 때 19년 연속 무분규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던 회사가 3년 전부터 전국에서 최고로 거친 노사분규 사업장으로 전락하고 만 이 상황이 왜 발생했는지, 그렇게 매듭을 묶은 자는 어느 쪽인지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그럼 누가 풀어야 하는지도 나오지 않겠나.

우선 이 대기업의 노사관계가 대립적으로 바뀐 건 강성 노조의 집권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실제로 2013년 10월 12년만에 당시 정병모 강성집행부가 들어선 뒤 노사관계는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임단협에서 노조집행부는 20년 연속 무분규 대신 20년만의 파업을 선택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은 3년 연속 노사분규 사업장이 됐다. 그렇다면 노사관계가 꽉 막히도록 매듭을 묶은 쪽은 노조일까?

하지만 그리 치부하기엔 노조도 할 말은 있다. 강성노조 입성이 어디 노조집행부 탓인가. 수많은 조합원들이 선거로 만든 것이다. 온건노조의 오랜 집권으로 인접한 현대자동차와의 임금격차가 벌어지자 조합원들의 불만이 쌓여갔고, 2013년 노조집행부 선거에서 결국 강성 노조가 들어선 게 아니던가. 회사 역시 조선업 호황기가 도래했던 시절 수 조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이 발생했는데도 곳간을 닫아 조합원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었더랬다. 더욱이 위기에 대비한 임금동결 결정이라 해놓고, 이제 와서 구조조정과 분사는 또 어찌 이해하란 말인가. 그렇다면 결국 매듭을 묶은 쪽은 회사일까?

허나 그러기엔 회사 역시 할 말이 있다. 분명 회사도 잘해보려고 했을 터인데 인간이 하는 일인 이상 어찌 불황의 도래를 예측할 수 있었단 말인가.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게 인간이기 마련,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작금의 위기에 자책만 하고 있으란 말인가.

또 이윤을 추구하는 게 목적인 회사가 직원들에게 많이 주지 않으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노조가 탄생한 것도 그런 연유일텐데 수익이 많이 나던 호황기에 온건성향의 노조집행부를 뽑아 임금인상권까지 회사에 위임하게 만든 것도 결국 조합원들 자신 아니던가.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리. 결국 매듭을 묶은 자는 노사 모두다. 원래 매듭이란 게 그렇다. 최소한 두 개 이상의 가닥이 필요한 법. 그러니 우선 노사가 함께 책임을 통감하는 게 해결의 첫 단추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푸는 방법을 논해보자. 방법적인 면에서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건 노사 모두 순간적인 횡(橫)적 사고에 집착해왔다는 것. 회사는 과거 눈앞의 이익을 위해 호황기 시절 임금을 동결시켰고, 거기에 분노한 노조는 작금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눈앞의 임금인상에 집착하고 있다. 모두 횡적이다.

솔직히 노조의 투쟁도 올 때까지 왔다. 파업 참여자수 저조에 최후의 히든카드인 금속노조 가입도 이미 써버렸다. 그런데도 사업분할은 확정됐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건 회사는 이제 서서히 종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 학습효과인지 회사는 그 동안 노조에 “불황인 지금 힘을 합쳐 이겨내 나중에 수익이 많이 나면 곳간을 충분히 열겠다”는 제안을 계속 해 왔다고 한다. 이제 노조도 종적 사고로 믿음을 갖고, 아니 못 갖겠으면 문서화를 하든지 해서 회사가 내민 손을 과감하게 잡아보는 건 어떨까. 매듭은 결코 순식간에 풀리지 않는다. 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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