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퍼레이드
막말 퍼레이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2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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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가운데 ‘막-’ 자로 시작되는 말치고 고상하거나 점잖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말은 찾아보기 힘들다. ‘막가다’(=막되게 행동하다.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행패를 부리다.), ‘막되다’(=말이나 행동이 버릇없고 거칠다.), ‘막돼먹다’(=’막되다’의 속어), ‘막된놈’(=말이나 행동이 버릇없고 거친 사람)이 대표적이다.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막가파’는 ‘막가는 파(派)’로 풀이해도 좋을 성싶다. ‘막말’(=되는대로 함부로 하는 말) 역시 느낌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막-’이란 접두어가 ‘거칠거나 품질이 낮은’, ‘닥치는 대로 하는’, ‘함부로’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막말’ 하면 곧바로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미국의 신임 대통령 트럼프다. 그는 대선 기간 내내 지칠 줄 모르고 뱉어내는 막말로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나 ‘비주류 정치인’이었던 그는 대선 라이벌 힐러리가 그토록 깨고 싶어 했던 ‘유리 천장’을 기어이 보기 좋게 박살내고 말았다. 칼럼니스트 박순택은 ‘트럼프의 막말 기술’이란 그의 칼럼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는 출마 선언에서 ‘멕시코가 문제 많은 사람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며 ‘이들은 성폭행범이고 마약과 범죄를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했다.…막말을 하면 오히려 욕을 먹고 지지율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그 막말이 강력한 무기였다.”

우리 국회에서 막말로 이름난 인사 가운데 으뜸으로 박OO 전 국회의원을 손꼽는 호사가들도 있다. 다음은 부산MBC라디오의 야구해설가로도 유명했던 추△△ 중견기자(작고)가 오래 전 너털웃음을 섞어가며 들려준 일화다. 추계추씨(秋溪秋氏) 문중에 퍼져 있는 얘기라며…. “막말, 욕설로 치면 국회에서 박OO 의원을 따라갈 이가 없었지.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아성에 도전한 여성이 있었어. 육두문자까지 마다않고 그를 제압한 여걸은 우리 일가 추미애 의원이었지. 호된 맛을 본 박 의원, 그 뒤론 ‘추미애’ 소리만 들어도 부리나케 도망쳤다던가.”

최근 탄핵정국의 막말 무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이는 소설가 김동리의 차남인 김평우 변호사이지 싶다. 박 대통령 대리인의 한 사람인 그는 지난 25일 서울 대한문 ‘태극기 집회’(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에서 “헌재의 결정에 복종하면 곧 노예”라는 요지의 주장을 폈다. 지난 22일에는 헌재 법정에서 “탄핵심판을 국민 결정에 맡기면 촛불집회·태극기집회가 정면충돌해 서울 아스팔트길 전부 피와 눈물로 덮일 것”이라고 말해 ‘내란을 선동하는 섬뜩한 막말’이란 지적을 받기도 했다.

막말은 SNS에서도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이래도 되는 건가요?’로 시작되는 ‘제8차 전라민국 여수시 시국광란대회’(→제8차 여수 시국대회) 이모저모’란 제목의 글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말로 도배가 되다시피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박 대통령을 장례식 하는 전라도 사람들, 인간입니까?…하나님보다 고향이 더 우상인 전라도분들, 진정 주님께 회개하셔야겠네요.…김대중이야말로 정말 최고로 악랄한 범죄자 아닌가요?…나라를 창남(娼男) 고영태가 이렇게 수작질하는데도 전라도 사람들, ‘힘내라 우리가 지켜줄게’ 하는 악한 사람들, 같은 민족 아닌 것 같아요. 사탄의 종들 모인 집단들 같아요.” 동영상 여러 컷도 함께 따라붙은 이 글은 울산에서 제법 이름 있는 어느 종교기관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분이 필자를 비롯한 다수의 지인들에게 보낸 것이다.

이 같은 ‘막말 퍼레이드’는, 지인이란 이유로 거절할 수도 없어, 많을 때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마주치게 된다. 영락없는 가짜뉴스(fake news)이면서도 그럴싸하게 포장된 ‘전자택배’를 무차별로 받는 횟수는 그보다 몇 배 더 많지만….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막말 퍼레이드가 그치지 않는 이유는, ‘트럼프의 막말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일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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