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방(獨房) 전성시대’
‘혼방(獨房) 전성시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19 1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유행어에 ‘혼’ 자가 들어가는 말이 의외로 많다. ‘혼밥’, ‘혼술’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국어사전에서는 버젓이 ‘명사’의 하나로 대접을 받는다. 뜻풀이는 ‘혼자 먹는 밥 또는 그런 행위’다. 알고 보니 ‘혼밥’이란 말은 북한에도 있는 모양이다. ‘한 사람의 한 끼가 될 만한 밥이나 음식’이란 뜻이라고 한다.

같은 논리대로 하자면 ‘혼술’은 ‘혼자 마시는 술, 또는 그런 행위’가 된다. 한 술 더 떠 ‘혼술혼밥’이란 말도 명함을 내밀었다.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밥을 먹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 또는 ‘1인 가정이 늘어나면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행위를 뜻한다’는 설명이 친절하게 따라붙는다. 여기서 ‘혼-’은 ‘혼자’라는 순우리말을 줄인 접두어다. 그런 ‘혼-’의 생식 능력이 유난히 돋보인다. ‘혼밥’이 ‘혼술’을 낳더니 이번에는 ‘혼커피’, ‘혼라면’, ‘혼치킨’, ‘혼잠’에 이어 ‘1인 가구’란 뜻의 ‘혼족’이란 유행어까지 줄줄이 낳는다.

내친김에 ‘혼-’이 들어가는 말을 나도 하나쯤’ 하는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혼방’이란 신조어다. ‘성질이 다른 섬유를 섞어서 짬’이란 뜻의 ‘혼방(混紡, mixed spinning)’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혼자 생활하는 방(房)’이니 일종의 ‘원룸(one-room)’ 개념으로 보면 된다. ‘혼방’이 있다면 ‘혼방 족(族)’도 있을 법하다.

최근의 ‘혼방 족’은 최순실 게이트가 마구 양산해 놓았다. 최순실 본인부터 조카 장시호, 안종범·정호성 전 청와대 수석, ‘법꾸라지’ 김기춘,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 김 종 전 문체부 2차관, ‘문화계의 황태자’ 차은택, 최경희 전 총장과 김경숙 학장을 비롯한 이화여대 교수군, 심지어는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이분들의 공통분모는 하나같이 혼방 즉 ‘독방(獨房)’ 신세라는 점이다. 바야흐로 ‘혼방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말 나온 김에 이재용 삼성 총수가 김기춘, 최순실씨와 함께 한솥밥을 먹고 있다는 서울구치소 모습을 잠시 들여다볼 필요를 느낀다. 참고로 구치소 ‘독방’의 대립개념은 여러 피의자(미결수)가 한꺼번에 생활하는 ‘혼거방(混居房, 혹은 혼거실)’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에 나오는 ‘7번방’을 떠올리면 되겠다.

17일자 뉴스에서 YTN은 이재용 부회장의 수감 소식을 이렇게 전했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시가 40억원이 넘는 한남동 자택 대신, 서울구치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구치소에는 6.56㎡(약 1.9평) 크기의 독방과 6명 안팎이 수감되는 12.01㎡ 크기의 혼거실이 있는데, 이 부회장은 독방을 배정받았다. 독방에는 전기열선이 들어간 난방패널이 깔렸고 매트리스와 TV, 화장실 등이 갖춰져 있다. 한 끼에 1천440원짜리 식사가 끝나면 화장실 세면대에서 스스로 식판과 식기를 다른 미결수와 똑같이 설거지해 반납해야 한다.”

같은 날 서울신문은 이런 기사를 올렸다. “수용자는 구치소 식사가 입맛에 맞지 않으면 김과 빵, 라면, 소시지, 과일 등을 직접 사 먹을 수는 있다. 가족이나 친지, 지인 등이 하루 5만원 한도로 미리 계산해 두면 이들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수용자 본인도 이틀에 한 번씩 하루 5만원어치까지 이들 식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조명을 켜놓은 채 잠을 자야 하지만 혼거방과 달리 온수를 혼자 쓰는 등의 ‘특혜’는 누릴 수 있다.”

이른바 VIP들의 독방 배정은 혼거방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린치’와 같은 ‘불필요한 마찰’을 막기 위한 예방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조윤선 전 장관을 비롯한 독방 수감자들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도 싸워야 한다. 코리아데일리는 1월 22일자 뉴스에서 “서울구치소의 한 여성교도관은 조 전 장관이 ‘공황장애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독방에서 가끔 눈물로 지새며 ‘이러려고 살아 왔나’라며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고 전했다. 혼방은 시대가 낳은 고문기구일까?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