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 칼럼]모두 다 떠돌이 세상살이
[손종학 칼럼]모두 다 떠돌이 세상살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1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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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따라 지난해 연말 공직에서 명예로운 퇴직을 하게 됐다. 36년이란 긴 공직 생활 중 사람살이가 빚어낸 수많은 기쁨과 행복, 아름다운 인연을 만날 수 있었다. 요즘 이런 인연들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 못 이루고 뜬 눈으로 날 밤샐 때가 많아졌다.

과학이 가져다준 선물 100세 시대, 앞으로 40년을 더 살아야 할 것이다. 인생에서 퇴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 말하지만 잘못하면 끔찍한 비극이 될 수도 있어 사실 굉장히 두렵다.

경제력과 건강이 받쳐주지 않고,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親舊)가 없어 긴 세월이 나에겐 신산(辛酸)의 고통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앞날이 두렵다. 그 중에서도 마음을 알아주는 진정한 친구가 없는 외로움이 더 무섭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 인연을 맺고 교류를 해 온 분들을 스스럼없이 내 친구라고 여겨 왔다. 늘 기억되는 소중한 인연으로 남아 있길 기대했는데. 지난날의 삶의 흔적을 되돌아 생각해 보며 친구라고 여긴 그들을 한 분 한 분 손꼽아 자문해 보면, 부끄럽고 슬프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알아주는 지음(知音=춘추전국시대 백아와 종자기 간의 우정에서 비롯된 고사)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나도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고 나가고, 넘쳐나는 SNS에서는 누군가 나를 말하고, 나를 찾고, 나를 기록하지만 사실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사이다. 모두 다 제멋에 취해 우정이니 사랑이니 멋진 포장을 해도 결국은 서로의 필요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고 있는 그런 인간관계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떠돌이 세상살이를 해 온 것이다. 살면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에 만날 친구가 없다. 살아갈수록 서툴기만 한 세상살이다. 맨몸, 맨손, 맨발로 버틴 삶이 서러워 괜스레 눈물이 난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만 싶다.

요즘 피를 토할 만큼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 만나면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데 생각하면 더 눈물만 난다. 가슴을 열고 욕심 없이 사심 없이 내 마음속의 고민과 세상살이에서 빚어지는 치열한 삶의 이야기를 밤새도록 함께 나눌 친구가 없다니. 인파 속을 헤치며 슬픔에 젖은 몸으로 홀로 낄낄대며 웃어도 보고 꺼이꺼이 울며 생각도 해 보았지만 살면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엔 아무도 만날 친구가 없다.

무언가를 이루고도 같이 기뻐해 주고 나눌 친구가 없다면 그것은 성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참담한 마음 가눌 길 없다. 외딴 섬에 갇혀 홀로 된 이 외로움, 서러움으로 밤새도록 절름절름 운다. 지금 당장 한 사람의 지음(知音)이라도 그립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무엇부터 해야 하나? 모든 게 다 내 탓이다. 내가 마음을 열고 낮은 자세로 진실되게 더 다가가지 않은 잘못이 크다. 앞으로 한 사람의 지음을 얻기 위해서는 더욱 낮은 자세로 살아야겠다.

우연히 마주친 친구와 ‘언제 한번 만나자’는 말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점심 약속을 잡고, 아니면 다음 날 전화나 이메일로 먼저 연락해야겠다.

또 기꺼이 모임의 총무를 맡으리라. 날짜와 시간을 조율하고 장소를 예약하고 회비를 걷는 일은 분명 성가신 일이다. 그러나 귀찮은 일을 묵묵히 해낼 때 마음을 알아주는 진정한 친구가 오지 않을까?

지음(知音)은 아니더라도 인터넷에서 말하는 “기쁠 때 울어주고, 슬프면 웃어주고, 잘 되면 구박하고, 벼랑 끝에 서면 밀어주고, 하수구에 빠지면 뚜껑 닫아 주고, 비틀거리면 넘어뜨리고, 일어나려면 밟아주고, 다시 일어나면 ‘내가 안 했어~!’라고 말해도 밉지 않은 친구를 남은 40년 동안 정성을 다해 구해 보리라.

손종학 (칼럼니스트, 전 울산시 체육지원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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