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칼럼] 울산의 시작, 신화리의 오래된 미래
[이정호 칼럼] 울산의 시작, 신화리의 오래된 미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12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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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관문 역할은 KTX 울산역이 단연 으뜸이다. 울산을 오가는 이들은 이곳에 첫발을 내딛거나 마지막 발을 밟게 된다. 울산역에 정차하는 경부선 고속열차가 평일에 46회, 주말에 56회로 일일 평균 이용객이 거의 2만 명을 육박하고 있다. 울산역은 이제 인근의 고속도로 나들목을 비롯한 사통팔달 도로와 더불어 교통 체계가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지면서 울산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 동안 잠잠했던 역세권 개발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복합 환승센터’와 ‘전시 컨벤션센터’이다.

울산역 ‘복합 환승센터’는 롯데울산개발이 주도한다. 총 사업비 2천572억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전체부지 7만5천395㎡에 건물 연면적 18만468㎡로, 지하 1층과 지상 4층 규모이다. 모든 버스와 택시, 승용차 등의 승강장, 무빙워크 등의 환승시설이 중심이다. 지원시설로는 쇼핑몰, 아울렛, 식품관 등의 상업시설과 시네마, 키즈 테마파크 등의 문화시설이 조성된다. 올해 착공하여 2018년에 준공한다는 목표인데, 이 사업이 완료되면 울산 서부권과 역세권 개발의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 컨벤션센터’ 건설도 구체화되어 실행을 앞두고 있다. 총 사업비 1천380억 원(국비 280억, 시비 1천100억)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전체부지 4만3천㎡에 건물 연면적 3만4천㎡로서, 8천㎡의 전시장과 2천500㎡의 회의실(컨벤션), 기타 부대시설 등을 지상 3층 규모로 짓는다. 오는 5월에 실시설계를 마치고 7월 착공하여 2020년 6월에 준공할 예정이다. 이런 시설들이 다 갖추어져서 본격적으로 활용이 가능하게 되면 울산 서부지역인 언양권의 발전이 한층 가속화될 뿐만 아니라 울산 전체 발전을 견인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울산역을 비롯한 역세권은 삼남면 신화리에 소재한다. 이곳 신화리에서는 그야말로 신화처럼 구석기 유적과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울산역 개발로 인하여 울산의 새로운 발굴 역사를 쓰게 된 곳이니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울산이 단위면적당 매장문화재가 가장 밀집한 곳이긴 하나 신화리의 구석기시대 유적 발굴은 실질적으로 울산에서는 최초가 된다. 울산역이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유적을 고스란히 세상에 드러내었으니 신화리는 이미 울산의 오래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발굴사업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여러 기관이 권역을 나누어서 실행하였다. 신화리는 작괘천이 삼동천에 유입되면서 태화강을 만나게 되는 나지막한 이 구릉지에 위치하는데, 1911년 이전까지는 ‘쌍수정리’라고 불린 의미를 짐작케 한다. 발굴 초기부터 유적 자체의 엄청난 규모, 높은 유구 밀집도, 양호한 잔존상태 등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곳 유적은 인근의 교동리 유적과 더불어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되었기에 선조들의 삶을 간직하고 있는 매우 소중한 문화유산인바, 발굴 성과는 이렇게 요약된다.

‘시기를 달리하는 3개 문화층이 안정된 퇴적층과 함께 다량의 구석기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구는 주거지 577기를 포함하여 총 690여 기에 달하여 규모가 큰 선사취락이라 추정된다. 삼한?삼국시대 초기의 유적은 분묘와 취락이 세트로 확인되어 가치가 높은 굴지의 유적이다. 고려?조선조의 분묘와 삼가마 우물 등에서 270여 기의 유구와 8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울산역 동편 충적지대에서 확인된 석기 제작장과 출토유물은 울산지역 최초인데, 이는 선조들의 생업활동이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자료이다.’

이렇듯 울산역이 신화리 유적 위에 건설되면서 유적 발굴 성과는 매우 크다. 울산역이 경부고속철을 개통한 지 6년이 지나 대곡박물관에서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울산의 시작 신화리, 땅속에서 만난 새로운 역사’라는 주제로, 지난해 10월 11일에 개관하여 올해 2월 5일이면 전시가 끝나는데, 숱한 신화리 유물 발굴의 의의와 성과를 조명하기 위함이다. 한편으로는 유적이나 유물의 모형을 역사(驛舍) 오른쪽에 일부 갖추어 놓았는데, 거의 주목을 받지도 못할뿐더러 관리상태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세계의 구석기 역사를 다시 쓰게 한 한탄강변 구석기 유적이 발굴된 것이 1977년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보면 신화리 유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늠할 수 있다. 품격 있고 따뜻한 창조도시 울산은 신화리의 유적을 귀하게 예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미 발굴된 유적과 유물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학문적 연구와 함께 역세권역 내 각종 시설 안에서 사진, 모형 전시 등의 방법으로 널리 알려져야 한다. 아직 발굴조사가 진행되지 않은 구릉의 중앙부와 남쪽은 공주 석장리나 부여 송국리처럼 유적 보존이 가능한 방법으로 발굴하고, 역사유적공원을 조성해야 한다.

<이정호 울산 북구문화원 부원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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