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년 역사 북정동우체국 꼭 옮겨야 할까?
118년 역사 북정동우체국 꼭 옮겨야 할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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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방 고을의 읍성 중심에는 객사(客舍)와 동헌(東軒)이 있었다.

객사는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는 공간이었다.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됐다. 동헌은 고을의 수령(守令)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이다.

울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울산의 객사는 옛 울산초등학교 터에 있었다. 동헌은 객사의 서편에 있었다.

왕조가 쇠진하면서 객사와 동헌의 기능도 상실됐다. 울산 객사 자리에는 보통학교가 들어섰다. 최근 이곳에 울산시립미술관을 건립하기 위한 발굴조사 과정에서 객사의 유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결국 미술관은 원래 짓기로 한 곳에 짓지 못하게 됐다.

동헌은 울산군청 회의실로 사용되다 허물어졌다. 지금은 그 자리에 동헌 건물이 복원돼 있다.

그런데 울산 동헌의 부속 건물에서 조선시대부터 시행된 업무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기관이 있다. 바로 동헌 입구에 있는 북정동우체국이다.

북정동우체국은 울산 관아의 형리청(刑吏廳)이 있던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대한제국기인 1898년(광무 2년)부터 우편업무가 시작됐다.

울산의 우정사업은 1897년 대한제국이 칙령으로 임시우체규칙을 공포하면서 시행되게 됐다. 이 규칙에 따라 이듬해 설치된 부산우체사(郵遞司)는 울산을 비롯한 밀양, 기장, 김해 등 8개 군의 수령에게 우정업무를 위임했다. 따라서 울산군은 관아에 있던 형리청 건물에서 우정업무를 시작했다. 1905년에는 울산임시우체소가 같은 곳에서 개소했고 1910년에는 울산우편국으로 이름을 바꿨다. 1950년부터는 울산우체국으로 변경돼 1977년까지 존속했다. 울산우체국이 신정동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은 북정동우체국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북정동우체국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미군정기를 지나 지금까지 118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무를 지속해온 공공기관이다.

최근 이 지역은 주택재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북정동우체국은 동헌부지에 편입돼 광장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우체국은 자리를 옮겨야 한다. 옮길 위치까지 지정돼 있다.

동헌 복원계획에 밀려 대한제국시대부터 자리를 지켜오던 우체국을 옮기려는 셈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통신환경은 급변했다. 하지만 우편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온 공공서비스이다.

사람들은 희로애락의 사연이 담긴 편지 또는 전보를 보내고 받으면서 웃고 울었다. 결혼이나 입학 등을 축하하는 축전도 있었고 조문하는 조전도 있었다. 분홍빛 연애편지도 있었고 ‘군사우편’ 스탬프가 찍힌 군인들의 편지도 있었다. 전쟁 때는 아들의 전사통보를 우편으로 받고 쓰러지는 어머니도 있었다.

북정동우체국에서는 이런 우편업무가 118년 동안 이어졌다. 울산에서는 이런 공공기관이 없다. 비슷한 곳이 있다면 대왕암공원에 있는 울기등대이다. 이곳에서는 1906년부터 지금까지 바닷길을 안내하는 등불이 켜졌다. 옛 등탑은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106호로 지정돼 있다.

북정동우체국을 옮기려는 계획은 폐기해야 한다. 오히려 동헌 확장복원계획에 포함시켜 우체국을 전통건축물 양식으로 다시 짓고 기념관이나 전시관 기능을 보강한다면 원도심의 새로운 명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우체국이 동헌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강귀일 취재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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