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향수가 그리운 디지털시대
아날로그의 향수가 그리운 디지털시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2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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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춘하추동 사계절을 요양병원에서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 모친과 함께 같이 살았던 남구 야음동 집에서 한때 ‘007 퀵서비스’란 간판을 단 적이 있었다. 생활정보지에 모집 광고를 냈더니 그것을 보고 찾아온 오토바이 라이더 몇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이른바 ‘창립 멤버’가 됐다. 그래서 근 일 년을 오토바이 위에서 그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면서 보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퀵서비스’(Quick Service)란 문자 그대로 급한 서류를 보내거나 수화물을 부치거나 찾아줌으로써 바쁜 현대인의 긴급한 업무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 업종의 하나다. 그 당시 ‘울산 퀵서비스’를 비롯한 몇몇 업체와 그 밖의 자생적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난립하게 됐고, 그 바람에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기도 했다.

수도권에서나 유행하고 보편화되는 줄 알았던 퀵서비스가 울산에서도 활성화되던 시기에 ‘삐삐’란 새로운 문명의 이기도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동전을 넣고 다이얼을 돌리는 빨간색 공중전화가 전화카드를 사용하는 공중전화로 바뀔 무렵,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전화기가 보급돼 있었다. 집 전화나 공중전화를 이용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삐삐의 사용자 번호를 누르면 삐삐 화면에는 발신자의 전화번호가 표시되곤 했다.

삼성전자의 ‘011’로 시작하는 애니콜 휴대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당시 휴대전화기의 크기는 손바닥만큼이나 컸고, 그보다 작은 ‘시티폰’이라는 단말기도 공존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었다. 시티폰은 휴대폰보다 작았지만 공급업체에서 전봇대에 송수신 장치를 설치해야만 사용이 가능했다. 또한 그 가까이에 있어야 전파가 잡혔고 거리가 멀어지면 수신 감도가 떨어져 사용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로 양분된 국산 휴대폰 업체의 발전은 새로운 기록의 경연장이라도 펼쳐진 것처럼 신제품 출시가 꼬리를 물었다. ‘팬택’이라는 업체가 한때 업계 2위의 자리를 넘보기도 했지만 경영난을 겪으면서부터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현재의 ‘스마트폰 혁명’에 비하면 옛날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기술의 토대 위에서 발전과 진화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른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980년대 말에는 구수한 목소리로 인기를 독차지하던 전설적인 DJ 이종환의 ‘별이 빛나던 밤에’를 등·하교하던 만원 버스에서 듣는 것이 자그마한 낙이었다. 그 무렵 동창생들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손편지’를 전하며 불타는 사춘기 청춘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고, 공중전화로 몰래 속삭이기도 했다. 집안의 대소사나 길흉사를 전보로 전하던 아날로그의 감수성 물씬한 그때의 젊은이들은 통기타를 퉁기며 포크송을 불렀고, 한창 유행하던 팝송 가사를 따라 외우기도 했다.

가수 박인희의 노랫말처럼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던’ 친구들끼리 1박2일짜리 반짝 캠핑을 즐기는 낭만은 그 무렵 젊은이들의 특권 같은 것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존 웨인의 서부극이 활개를 치면서 인기몰이를 했고, 특유의 괴성을 지르며 밧줄을 타고 밀림을 누비던 타잔도 꽤 오랜 기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근자에는 인터넷과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자동화기기가 주변에서 넘쳐나는 시대가 찾아왔다. 몇 년간 작은 신문사의 편집장을 지내면서 사진을 수도 없이 찍었지만 인화해서 액자에 담은 사진은 손에 꼽을 정도로밖에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 카카오톡으로 전송해주거나 이메일로 보내주고, 인터넷카페나 SNS에 올려두면 저장이 될 뿐 아니라 아무 때나 찾아 쓸 수가 있어서 편리하다.

필자는 아날로그적 시대를 지나오면서 ‘느림의 미학’과 낭만 가득한 감수성을 누려 왔다. 하지만 지금은 생활 구석구석에서 디지털의 엄청난 혜택을 맛보면서 살아간다. 집집마다 연탄을 때고 덜컹거리는 비둘기호를 타던 시절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옛 시절의 추억이 향수처럼 그리운 것은 비단 필자만의 느낌일 뿐인가.

겨울의 초입,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은 감들이 나뭇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박정관 굿뉴스울산 편집장 중구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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