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페르소나 시절에 지칠 만도 한데…
긴 페르소나 시절에 지칠 만도 한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1.29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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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산책
로마 시절, 배우들은 연극무대에서 페르소나(persona)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 지금 우리 사회 또한 각자에게 배역을 주었다. 취업에 성공하여 입사하게 되면 그 조직의 문화를 익혀야만 하고, 슈퍼바이저 및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 어울리는 페르소나를 써야 한다. 평생 페르소나를 쓰고 살 수 없지만, 불행히도 최근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페르소나가 맨얼굴이라고 믿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사회복지사의 역할 등에 대한 토론을 할 때 추천하는 영화 중 하나로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1997)’이 있다. 이 영화 속에서 윌은 어린 시절 학대로 인해 마음을 굳게 닫고 있었다. 그 탓에, 사람들이 자신의 맨얼굴을 보면 거부당할까봐 또다시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윌의 뛰어난 지적능력은 타인보다 우월하기에 부러움을 받으며 그의 페르소나를 더욱 강화시킨다. 스카일라와의 사랑에서조차도 윌은 지적인 모습을 강조하며 그의 가족이나 사는 곳 등을 묻는 물음에는 회피하거나 거짓으로 대한다. 윌이 맥과이어 교수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여전히 맨얼굴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는다. 무엇이 그를 두렵게 한 것일까?

맥과이어 교수는 윌에게 대답을 강요하기보다는 윌이 스스로 말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먼저 자신의 죽은 아내가 자면서도 방귀를 뀐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이러한 사소한 버릇이 제일 기억에 남고 행복했다고 한다. 어쩌면 방귀를 끼는 것은 결점, 즉 자신만이 알고 있는 맨얼굴이라 할 수 있다. 맥과이어 교수는 이렇게 윌이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이끌어내면서 라포를 형성한다. 특히, 맥과이어 교수가 “It`s not your fault.”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윌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는 함께 그 페르소나를 벗어버리게 된다.

최근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MBC <복면가왕>에서 결국 시청자가 궁금해 하는 것은 가면을 벗는 순간 드러나는 출연자의 맨얼굴이다. 무대 뒤편을 바라보며 가면을 벗고, 그 순간 주변에 앉은 관객들의 표정이 5, 4, 3, 2, 1, 카운트다운과 함께 클로즈업되고, 출연자의 얼굴을 먼저 확인한 관객들의 반응에 패널들이 ‘왜’ ‘누군데’라는 반응을 보이는 순간이 가장 긴장되는 것 또한 같은 이치이다.

연예인 혹은 스포츠스타나 유명방송인뿐 아니라 정치인들처럼 미디어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나 관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맨얼굴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사실상 어려우며 대부분 이들은 페르소나를 쓰고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들 중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가면 뒤의 자아(self)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강신주 박사는 『철학이 필요한 시간(2011)』에서 ‘맨얼굴이 없다면, 페르소나를 쓰는 일도 없다’고 말한다. 에픽테토스(Epiktetos)는 『앵케이리디온: Encheiridion』에서 ‘신에 의해 주어진 배역을 소화하는 것이 인간이며, 페르소나와 맨얼굴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지나치게 페르소나가 강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모르는 사람이고, 맨얼굴만을 강조하면 주위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한다. 평판이나 지위는 모두 타인들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지만 믿음, 욕구, 혐오 등은 우리의 맨얼굴이니 자신의 감정과 가치관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많은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페르소나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자아(self)를 잘 키워 나의 자신감 있는 맨얼굴을 보여주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까? 우리의 맨얼굴은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를 벗겨야 찾을 수 있을까?

맨얼굴이 건강하다면, 우리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맨얼굴이 건강하지 않다면, 자신이 쓰고 있는 페르소나를 벗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2천만원어치 정도의 태반주사, 감초주사, 마늘주사 등이 맨얼굴보다는 페르소나를 강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긴 페르소나 시절에 지칠 만도 한데…. 우리 또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유영미 울산과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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