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에 빚지고 산다
가로수에 빚지고 산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0.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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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보다 지구의 온도가 많이 높아졌나보다. 10월임에도 한낮에는 늦더위가 아직도 여름을 붙잡아 두고 싶어 하니 말이다. 하지만 요 며칠사이 늦더위는 기운을 다하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여 옷깃을 여미게 한다. 계절은 이미 가을에 들어와 있다.

대공원 근처에 사는 혜택으로 저녁으로 한 번씩 울산 대공원에 산책을 간다. 요즘 공원의 색깔이 무척 아름답다. 단풍의 절정이 되기엔 아직 시기가 아니지만 조금씩 가을 물이 들어가고 있으며, 잎이 많이 달려 있지만 가지엔 이미 물기가 많이 빠졌고 빛깔은 이미 잎은 물론이고 수피까지 조금씩 변해가는 가고 있다. 잎이 떨어져, 촘촘함으로 무성했던 나무들이 비움으로써 공간의 여유가 우리의 눈을 시원하고 선하게 한다. 대공원 마당에 떨어져 나뒹구는 나뭇잎과 열매는 가을의 운치를 더 하며 나무, 풀, 바위들은 마치 안성맞춤인 자기자리에 편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서 있는 나무들도 당당함과 자긍심이 있어 행복해 보인다, 조락의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는 도로 위 가로수들 역시 가을 물이 한창 들고 있음은 좋은 곳에 사는 놈들이랑 별 반 다를 게 없다. 본능에 충실히 살고 있기에 계절이 바뀌면 온도와 습도에 따라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잎을 마르게 하여 빛깔을 뿜어내어 고운 색으로 물을 들이고 열매를 맺어 아스팔트 위에 쏟아 놓는다.

4차선 이상의 도로에서는 가로수 없는 길을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가로수를 그냥 도로에 서 있는 건물처럼 배경으로만 느끼는 것 같다.

나무가 가장 힘 있고 자랑스러워하는 시기인 꽃을 화사하게 피울 때가 되어서야 “아, 이곳에 벚나무가 있었지, 가로수는 역시 화사한 꽃을 피우는 벚꽃이 최고지”하며 환호하며, 여린 연초록의 새순이 귀여운 별모양, 아기 손가락 모양으로 딱딱한 가지를 뚫고 나올 때면 그제 서야 그곳에 그런 나무가 있었음에, 그 봄물 오름에 어린 날의 나른한 봄날 오후를 회상하며 봄 향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처럼 가을단풍이 들어갈 때면 일렬로 서 있는 그 색의 농담을 보며 아름다운 나무를 보게 되는 것 같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에게는 그나마 가로수에서 자연을 느끼기 때문에 가로수가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가로수로 살아가는 일생이 결단코 행복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나무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나무 입장에서는 사람에게 굳이 인정받고 관심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많이 봐 주는 곳에 있어서 좋은 이유는 없는 것이겠지. 생육 하는데 필요한 적당한 일조량과 바람, 적당한 기온, 번식하기에 좋은 환경 등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인들 상관이 있겠는가. 그런 면에선 포장된 도시의 도로 위는 나무가 살기에 가장 나쁜 환경일 것이다. 햇빛도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높은 빌딩 때문에 제한적으로 받지 못하는 곳에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자동차 매연을 24시간 마셔야 하고 자칫 교통사고로 가로수를 들이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생명에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어디 그 뿐이랴.l 포장 아래의 모습은 본적은 없지만 그 뿌리들이 자유로운 모습으로 땅속을 넓혀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산이나 공원에서는 서로 다른 나무의 뿌리들이 땅 속에서 은밀히 만나 부여잡고 비바람과 천둥소리를 함께 맞고 이겨낼 것인데 홀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종족 보존해야하는 씨앗을 흙에 뿌릴 수 없고 아스팔트위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비극적이다.

그런 가로수가 고맙다. 우린 가로수에게 늘 빚져 있다. 우린 자연에 늘 빚져 있다

/ 장금란 학성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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