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그리고 박어둔
독도 그리고 박어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0.3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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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은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리고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선포를 기념하는 ‘독도의 날’이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한말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직접 공포했다.

독도의 날은 독도 수호 운동에 앞장서 온 민간단체 ‘독도수호대’가 2000년에 맨 처음 지정을 제안했다. 2007년 10월 25일에는 ‘독도의 날 제정·선포 발기인’ 33인이 ‘독도의 날 선포문’을 발표했다. 33인 중에는 박관용, 안상수, 윤여준, 이장희, 현승일 같은 이들의 이름도 눈에 띈다. 선포문에는 이런 글이 있다. “역사여, 동해물이 다 마르고 백두산이 다 닳도록 이 날을 후세에 길이 전하라. 겨레여, 이 날을 맞을 때마다 독도를 기억하고 독도를 사랑하며 독도를 지켜 후손에게 물려줄 것을 엄숙히 다짐하자.”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려는 움직임은 이전부터 있어 왔다. 2004년에는 서명 운동이, 2008년에는 국회 청원 활동이 시작됐다. ‘경술국치 100주년’인 2010년에는 독도학회, 한국시인협회 등 대표적 시민·사회단체들이 ‘독도의 날’을 선포했다. 그래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날을 독자적으로 기념하는 지방은 있다. 울릉군은 2004년 조례로 10월 25일을 ‘군민의 날’로 정했다. 경상북도의회는 2005년 조례로 매년 10월을 ‘독도의 달’로 못 박았다. 일본 시마네현은 같은 해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을 정해 매년 2월 22일 이를 기념토록 했다.

올해 울산의 기념행사는 지난 27일 남구 옥동 정토사에서 ‘울릉도·독도 수호 박어둔 선양회’가 마련했다. 이 모임은 (2014년 한일문화연구소장 김문길 교수(부산외국어대)와 울주문화원 이사 이양훈씨(전 KBS PD), 정토사 주지 덕진스님이 뜻을 모아 결성했다. (사)독도중앙연맹 이수광 총재의 ‘독도 수호 특강’이 끝나자 이양훈 선양회 이사가 결의문을 낭독했다. “▲울릉도와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과학적 근거로 대한민국 영토다.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을 규탄한다. ▲우리 울산인들은 300여년 전 울릉도, 독도를 지킨 울산인 박어둔의 후손답게 독도를 지키는 데 앞장선다.” 이 메시지는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제5회 전통음식문화한마당 행사’를 둘러보러 온 서동욱 남구청장에게도 전달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양훈 이사의 박어둔 이야기와 ‘박어둔 선양사업’ 제안이다. (그는 부산 동래 출신 안용복의 호칭 ‘안용복 장군’에 맞서 ‘박어둔 장군’이란 표현을 고집한다.) 그는 1687년의 조선조 호적을 근거로 박어둔이 울산 남구 출신임을 애써 강조했다. 당시 호적은 박어둔이 23살에 아내 ‘천시금’과 결혼, ‘대대’에서 ‘목도’로 이사한 사실을 전해준다. 그는 ‘대대’란 ‘대현면’이며 이곳은 지금의 남구 전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또 박어둔의 직업은 소금을 굽는 ‘염간’이자 비수기에는 물고기를 잡는 ‘해척’이었다고도 했다. 앞서 이수광 총재는 1693년, 대장 격인 박어둔이 안용복을 통역으로 삼아 울릉도, 독도로 들어가 그곳에 눌러 살던 일본인 수백 명을 쫓아냈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왜구의 노략질에 신물이 나 울릉도, 독도에 아무도 못살게 하는 ‘공도(空島) 정책’을 폈다.

이양훈 이사는 ‘박어둔 선양사업’ 4가지도 제안했다. ▲생가 복원 또는 동상·석상 건립 ▲애니메이션 제작 ▲일본 시마네현청 항의방문 ▲박어둔 학술세미나와 어린이 백일장·미술대회 개최가 그것이다. 얼마 전 시마네현을 둘러보고 왔다는 그는 ‘독도 수호’ 의지를 천명하는 현청 뜰 현수막 시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다음 뒷말이 귀를 솔깃하게 했다. “시마네현 바닷가에는 ‘신라 신사’도 있고, 한글 안내문도 볼 수 있다. 시마네현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제발 자주 다녀가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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