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당하는 대운산 능이버섯
수난당하는 대운산 능이버섯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0.2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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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마지막 주 일요일 오전 8시 30분. 대운산 3주차장이 가득 찼다. 늦게 도착한 이들이 주차공간이 아닌 도로가에다 차를 세우면서 ‘단풍철도 아닌데’라며 구시렁거린다. 매점 앞에 서 있던 마을 주민들 가운데 한 분이 언짢은 듯 한마디 내뱉는다. “능이 따겠다고 외지에서 몰려와갖고 저 난리 아입니꺼.” 이 이야기를 듣고 계곡 쪽으로 들어가 보니 계곡 주변으로 주차할 만한 공간마다 차들이 이미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어떤 곳은 차량 교행이 힘들 정도로 빽빽하다.

송이버섯이 좋다고들 하지만 어떤 이들은 ‘1능이, 2송이, 3표고’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웰빙 바람을 타고 능이버섯이 그 정도로 인기를 얻게 됐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부터는 입소문을 타고 대운산 참나무 숲에 능이버섯이 많이 난다고 야단법석이라고 했다. 8월말부터 나기 시작한다는 능이버섯을 서로 먼저 따겠다고 외지인들이 몰려들다 보니 이들이 타고 온 차들로 만차(滿車)가 된 모양이었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북서쪽을 향하고 있는 어느 골짜기에 능이가 많이 난다는 소문을 듣고 부산서 왔다는 한 등산객이 입을 연다. 새벽에 도착해서 골짜기를 3개째나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왔지만 능이버섯은 끝내 보질 못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부부 등산객들이 다른 능선을 타고 내려온다. 능이버섯 이야기를 하자 그냥 지나쳐 버린다. 아마도 버섯을 따는 행운을 맛본 모양이었다.

사실 대운산은 산림청 소유의 땅이다. 산림청의 허가 없이 버섯을 채취하는 것은 산림법의 저촉을 받게 되어 있다. 최고 징역 7년 이하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산행객들은 “산에서 자란 버섯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 아니냐”는 말을 예사로 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버섯을 따서 가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길이 아닌 곳을 등산화로 밟아버리면 버섯 포자가 파괴되고 빗물에 씻겨 가버리기 때문에 내년에 다시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큰일”이라고 하소연한다. 많이 난다고 소문난 골짜기의 좁은 길은 반질반질할 정도로 닳아 있었다.

백세 시대를 맞아 도시민들이 농촌이나 산촌을 다녀가면서 따거나 뜯어가는 농산물이 예전에 ‘장난삼아 하던 서리’ 수준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서리’는 아는 사람들끼리의 이야기이자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개념이다.

하지만 요사이 수확기에 접어든 농촌에서 일어나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일면식도 없는 외지인들이 밭에 키우는 고추나 나물, 심지어는 감까지 주인이 보는 앞에서도 배짱 좋게 따 간다. ‘왜 따느냐?’ 하고 주인이 붙잡으면 ‘농촌 인심 한 번 사납네.’ ‘몇 개 된다고? 나눠나 먹어야지’라며 도로 화를 낸다고 한다.

1년 동안 애지중지 가꿔서 내다팔아야 수익을 얻는 농민 입장에서는 밥그릇을 빼앗기는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도 염치 없는 짓들이 판을 친다. 자기 지갑의 단돈 100원은 아까워하면서 농민들이 가꾼 농산물은 함부로 대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니 기가 찬다.

농민들이 기르는 농산물은 자식 기를 교육비가 되는 그분들의 연봉이다. 그런 농산물을 당연한 듯이 가져가는 것은 엄연한 절도행위다. 사유지나 국유지에 무단침입을 한다면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유림이나 국립공원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약초나 버섯을 일부 캐어 낼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버섯도 지키고 산도 지키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작업단을 꾸리고 관리기관과 계약을 맺고 공동작업을 해서 마을 전체의 수익사업으로 돌려줄 수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주민협의회가 만들어지면 외지인들의 무단출입을 막을 수 있고 산림훼손도 줄일 수 있다. 주민소득이 올라가면서 도시민들도 산나물이나 버섯을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대운산 능이버섯이나 송이버섯 등 귀한 임산물들이 제대로 자라고 숲이 건강해지는 방법을 빨리 강구해야 한다.

전 인구가 고령화되는 추세이지만 농촌의 고령화는 더욱 빠르다. 따라서 어르신들이 어렵게 지은 땀의 결실을 장난삼아 따는 것이 ‘장난서리’가 아닌 절도라는 인식을 갖도록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 농촌 마을의 어르신들은 우리 친척이거나 아버지, 어머니일 수도 있다.

농촌이 살아야 도시민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다. 인심 좋은 농촌으로 다시 돌려놓는 것은 도시민들이 하기 나름이다. 지금은 농번기다. 농촌 일손 돕기부터 나서 보는 것이 어떨까.

윤석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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