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세계화’의 중심, 울산이 됐으면”
“‘국어 세계화’의 중심, 울산이 됐으면”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6.10.1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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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철영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
한글 정보화·세계화 공로로 근정포장 수상

닷새 뒤 옥철영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연구실은 울산대학교 행정본관 바로 뒤 ‘7’이란 숫자가 새겨진 ‘전기컴퓨터공학관’ 3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빼곡히 들이찬 전문서적 탓일까? 연구실이 무척 좁다는 느낌이 앞섰다. 옥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7이란 숫자, 궁금하시지요? 캠퍼스 안에서 일곱 번째로 지었다는 뜻이랍니다.”

화제는 잠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글날 570돌 기념행사 당시의 일로 바뀌었다. “상금은 안 받았는지?” 우스개삼아 물었다. ‘근정포장’과 ‘포장증’뿐이었다며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사진 두 컷을 보여준다.

그의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제12회 과학기술우수논문상(2002.4, 과학기술총연합회)을 시작으로 ‘품사 및 동형이의어 동시 태깅(tagging) 시스템’ 대상(2009.10, 국립국어원), ‘세종형태의미 말뭉치(문장)’ 금상(2010.10, 국립국어원), ‘UTagger’ 대상(2013. 10, 문화체육관광부·국립국어원)과 이번 수상까지 굵직굵직한 ‘주요 수상’만 12회나 된다. 이 가운데 국립국어원 또는 문화체육관광부·국립국어원 공동주최 ‘국어정보처리시스템 경진대회’ 수상 경력만 7차례. 그의 연구 성향을 대충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기술이전 100건… 90건은 ‘연구용 무상으로’

옥 교수의 화려한 수상 경력은 연구 내용에 대한 궁금증도 일게 했다. ‘근정포장’ 수상 사유는 ‘한글 정보화·세계화를 위해 다의어(多意語) 수준의 어휘지도(word-map)를 구축한 공로’였다. 그는 특히 동형이의어(同形異義語=글자는 같아도 뜻이 다른 말, 同音異義語)의 의미를 기계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연구실의 컴퓨터 앞으로 안내한 다음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을 이어갔다. ‘사과’란 단어를 본보기로 떠올렸다. “먹는 과일 ‘사과’(apple)와 용서를 구하는 ‘사과’(apology)를 컴퓨터가 스스로 구분할 수 있게 했지요. 이 두 단어의 뜻에 들어맞는 한자를 자동으로 붙일 수 있는 기술도 개발했고요.” 이를테면, 한글 모양이 같은 ‘사과’라 할지라도 문맥에 따라 영어로 ‘apple’인지 ‘apology’인지를 가려내 ‘沙果’ 또는 ‘謝過’란 한자낱말을 괄호 안에 집어넣어 이해를 도와 준다는 것이다. 옥 교수가 연구 과정에서 주로 참고한 사전은 국립국어원의 ‘한국어 기초사전’이었다.

옥 교수의 이런 기술은 앞서 언급한 국어정보처리시스템 경진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이 기술을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나 다른 대학에 연구용으로도 제공했다. 물론 아무 대가도 없이 흔쾌히. 옥 교수의 각별한 배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각별한 배려’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그의 ‘기술이전 실적’만 하더라도 ‘유상’보다 ‘무상’의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가 대가를 받고 기술을 이전한 ‘유상 기술이전’은 10건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무상 기술이전’은 그 9배인 90건이나 된다. 지난해 10월에는 ‘UTagger’ ‘Ucorpus’ 등 10건의 기술을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연구용으로 그것도 무상으로 제공했고, 지난 2월에는 ‘UTagger’ ‘Ucorpus’ 등 9건의 기술을 (주)SYSTRAN인터내셔널에 역시 연구용으로, 무상으로 이전시켰다.

여기서 ‘U’는 ‘울산대’ 또는 ‘울산’을 의미한다. 그리고 ‘SYSTRAN인터내셔널’은 언어번역 사업을 주로 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UTagger’는 한국어 의미 처리 시스템이다. 옥 교수가 이 업체에 ‘UTagger’ 기술을 이전해준 이면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바라는 깊은 뜻이 깔려 있다. ‘UTagger’ 서비스는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와 공동으로 개발했고, 한자로 사이트(漢字路·hanjaro. juntong.or.kr)를 통해 일반인에게도 공개되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연구논문은 50편이 넘고, 산업재산권은 특허권(12)과 상표권(2) 등을 합쳐 무려 30건에 이른다.

-“다문화가족 국어 습득에 도움 주고 싶어”

옥 교수가 개발한 ‘다국어 어휘 대역어 제공 서비스’(일명 ‘동음이의어 분별 시스템’) 기술을 편의상 ‘괄호처리’ 기술이라고 해두자. 이 기술은 주어진 한글 문장에서 각각의 형태소(形態素=의미를 지닌 가장 작은 언어단위)에 들어맞는(=해당하는) 외국어를 골라 바로 뒤의 괄호 안에 집어넣어 이해를 도와주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그러나 컴퓨터상의 작업은 결코 수월하지가 않다. 이른바 ‘어깨번호에 대한 분별능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든 ‘사과’란 낱말이 표준국대사전에는 현재 쓰지 않는 것까지 합쳐 8개나 된다. 이때 사전에는 각 낱말이 나타나는 순서대로 ‘1, 2, 3…’ 하는 식의 순번이 글자 오른쪽에 매겨지는데 이를 ‘어깨번호’라고 한다.)

“한자에 대한 어깨번호 분별능력은 96%로 보시면 됩니다.” 이만하면 대단한 기술 수준이 아닌가? 영어에 대한 어깨번호 분별능력 70%와 비교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이 70%를 9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그의 당면 목표다.

옥 교수가 ‘괄호처리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외국문자는 모두 10개다. 러시아어, 몽골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아랍어, 영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 태국어, 프랑스어가 바로 그들. 이 가운데 한자의 괄호처리 과제는 이미 매듭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연구시간표에는 쉼표가 없다. 휴지기도 없이 이번에는 다른 외국문자 과제를 붙들고 씨름해야 한다. 다음 단계의 ‘한글 정보화·세계화 연구’ 과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 최근 베트남 호치민대학교를 나온 베트남 연구교수와 정보를 주고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생각입니다. 특히 결혼으로 이주해 온 다문화가정 여성과 그 자녀들. 이분들이 우리 국어를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겠지요.”

‘UTagger’도 실은 그런 배려 속에서 창안해 냈다. 다문화가족을 위한 기술개발 과제에는 부산외국어대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 울산대학교 관계자는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한글을 문맥에 맞도록 다른 외국어로 변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연구 과제는 한류(韓流) 바람을 타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지구촌 한글가족들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옥 교수가 말을 꺼냈다. “국립국어원 소속 ‘세종학당’이 전 세계에 140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세종학당’은 베트남이나 몽골 같은 외국에서 우리말을 가르치는 한국어교습소인 셈이지요.” 한국어 교사들은 국립국어원에서 직접 파견하는 실력파 인재들이라고 했다.

“K팝을 좋아하는 한류 팬들이 우리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는 잘 따라 불러도 노랫말 뜻은 잘 모르잖아요? 그 뜻도 제대로 알게 해 주자, 이것이 제 연구 목적이기도 합니다.”

-‘한자 병기’ 찬성, 기업보다 문화콘텐츠 선호

어려운 질문 하나를 슬쩍 던졌다. ‘한글 전용’과 ‘한자 병기(漢字 倂記)’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대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한자 병기’를 지목한 것이다. 십여 년에 걸친 국어 연구가 가져다 준 체험적 결론으로 들렸다.

“한자는 조어력(造語力)이 뛰어나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어요. 음절 하나하나마다 뜻을 지닌 뜻글자가 아닙니까? 요즘 젊은 세대들은 한자를 모르다 보니 ‘역할’이 맞는지 ‘역활’이 맞는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울산이 저명한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이란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견과 소신은 뚜렷했다. 시야를 우리 발밑만 쳐다보지 말고 세계로 넓히자는 생각을 그는 고집스레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외솔 선생님은 ‘한글이 목숨’이라고 하실 정도로 우리 한글을 지키려고 애쓰셨던 분이지요. 베트남은 본래 고유문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알파벳을 주로 사용하고, 몽골도 지금은 고유문자 대신 키릴문자(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 외솔 선생님의 정신과 업적은 영원히 기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국어의 지킴이’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우리 국어의 정보화·세계화에 매달리는 것도 다 그런 일념 탓이라고 보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는 국어의 정보화·세계화가 외솔 선생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힘주어 피력했다. 그는 또 국어 세계화의 중심에 울산이 서게 되기를 희망했다. “울산이 키워드로 기업과 산업의 논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로 각광받는 도시가 되었으면 하는 게 제 꿈이지요.”

호반 산책도 원불교 신앙도 ‘아내와 함께’

옥 교수가 영혼을 의지하는 곳은 뜻밖에도 ‘원불교 울산교당’. 부인 황봉수 여사(56)의 뜻을 받아들여 신앙생활에 전념한 지 벌써 10년째다. 이수동 전 울산과학대 총장이 중매를 섰다. 1985년에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올해로 결혼 32년차다. 자식농사 잘 지은 덕분에 슬하에 남부럽지 않은 형제(2남)를 두고 있다.

건강은 스스로 알아서 챙긴다. 매일 아침 6시부터 1시간은 문수시립궁도장에서 시위를 당긴다. 국궁(國弓) 예찬론자가 된 것은 정신건강에 더없이 좋기 때문이라 했다.

마치고 나면 샤워도 할 겸 대학교 실내수영장에서 20분 남짓 몸을 푼다. 저녁 시간이면 부인과 함께 문수체육공원 내 호반에서 1시간 정도 산책을 즐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부동반 산책은 빠지는 일이 없지요.”

호적상 본적지는 경남 거제이지만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부산이다. 부산 동아고등학교를 거쳐 78학번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석사학위, 박사학위도 모두 서울대 대학원에서 취득했다.

울산대학교 강단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84년 3월. 오직 한 길만을 걸었고, 햇수로 어언 32년째다. “KAIST에서 석사과정만 마쳐도 교수요원으로 환영받던 시절이었는데, 저도 모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차자마자 울산대학교에 적을 두게 됐지요.”

옥철영 교수. 그의 명함상 소속은 두 가지다. ‘전기공학부’와 ‘국어국문학부’가 바로 그것.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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