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타령, 정도(程度)와 정도(正道)
돈 타령, 정도(程度)와 정도(正道)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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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程度)’라는 단어가 있다. ‘알맞은 한도’라는 뜻이다. 일상에서는 “정도껏 하라”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동음이의어로는 ‘정도(正道)’라는 단어도 있다.

소리는 같지만 ‘올바른 길’이라는 뜻으로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의외로 통할 때가 자주 있다. 정도(正道)가 목적이라면 정도(程度)는 수단이 된다는 것. 즉, ‘올바른 길(正道)’을 위해서는 ‘알맞은 한도(程度)’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이라는 사자성어나 ‘중용(中庸)’의 철학은 그렇게 탄생했다.

작금의 현대자동차 노조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를 떠나 노조가 과연 약자인지를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노사 관계란 게 늘 그러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勞)는 약자고, 사(社)는 강자로 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현대차 만큼은 다르다. 무려 4만8천여 명에 이르는 조합원들이 버티고 있는 현대차 노조는 그야말로 일개 군단을 방불케 한다. 이웃한 현대중공업과 달리 태생적인 공정이 서로 연결돼 있어 노조의 파업권은 늘 막강한 화력을 뿜었다. 한번 파업을 하면 일사분란하게 전체가 파업한다. 예외가 없었고, 회사는 파업시즌만 되면 생산차질로 인해 발만 동동 구른다. 그렇다고 지금껏 셀 수도 없이 많은 파업권을 행사해온 노조에 반해 회사가 직장폐쇄라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적은 거의 없었다. 임금이나 처우? 알려진 바에 따르면 평균연봉이 9천600만원으로 ‘귀족노조’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이래도 현대차 노조가 약자일까. 강자라면 책임도 따른다.

그랬거나 말거나 올해도 현대차 임금협상은 노조의 “돈타령”에 질질 끌려 다니며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 떠나 그들의 재채기 한방에 나가떨어지곤 하는 현대차 협력업체들을 생각하면 노조의 돈타령에 “이기적”이라는 말은 절로 나온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하면 그만큼 일을 못해 월급이 대폭 줄어든다. 그들의 월급수준은 현대차의 3분의 1 수준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런 탓에 현대차 파업 소식이 인터넷상에서 전해지면 협력업체 직원들의 눈물겨운 호소는 이제 단골 댓글이 됐다.

진보의 근본은 보편성에 있다. 대한민국 노조는 대부분 진보를 외친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에 대해서는 자유를 부르짖고, 불익에 대해서는 보편을 외치는 게 과연 진보일까.

불황 속에서도 1천800만원이나 되는 돈이 일시불로 지급되는 안을 거부했던 현대차 노조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며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아마도 현대차 조합원들은 “왜 우리 자유에 당신들이 간섭하는데!”라고 속으로 외칠 거다. 그런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돈타령도 정도(程度)껏 해야 정도(正道)를 갈 수 있다”고.

<취재 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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