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에 찾아든 불청객
한가위에 찾아든 불청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19 2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족 고유의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느닷없이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12일 저녁 7시 44분 경주시 남남서쪽 9km 지역에서 5.1 규모의 강진이 발생한 것이다. 울산에 살고 있는 필자는 신문사 사람들과 웅촌의 어느 단골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식당은 추석연휴에 즈음해서인지 매우 한산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조용히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불청객이 찾아든 것은 바로 이때였다.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굉음과 함께 전해진 강진의 위력. 진동은 삽시간에 우리 일행의 온몸을 파고들었다.

지진이 일으킨 파열음은 군 복무 시절 사격 연습하던 탱크에서 발사하던 포탄의 포격 소리처럼 요란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심상찮은 기운을 직감했다. 강진의 여파로 목소리의 톤이 높아진 일행은 어떻게 된 일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필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인아주머니가 시청하는 TV 앞에 코를 박았다. 2층에서 샤워를 하던 주인아저씨는 “다리가 휘청거려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며 부리나케 씻고 내려와 흥분된 목소리를 내질렀다.

잠시 후 속보가 흘러나왔다. 갑작스런 재난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현장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다시 자리에 앉은 우리는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가족과 친지들에게 휴대폰을 돌리기 바빴다. 곧 이어 막 도착한 국민안전처의 문자메시지와 뉴스를 통해 지진의 전모를 서서히 파악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저녁 8시 32분쯤 또 다시 경주시 남남서쪽 8km 지역에서 5.8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그 강진은 엑스레이처럼 순식간에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허둥지둥 식당을 빠져나온 우리 일행은 황급히 승용차에 올라탔다. 라디오에서 뉴스 속보가 전해지는 가운데 호계에 살고 있는 일행 한 사람의 고등학생 딸이 “책꽂이 위의 책들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신문사가 있는 우정동 인근으로 진입하자 아파트에서 놀란 주민들의 차량 행렬이 긴 꼬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들이었다.

급하게 호계 자택으로 귀가하던 한 일행이 소식을 전해 왔다. “중구청을 지났는데 거기서부터 차량들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호계지역 고층아파트 주민들이 대피하느라 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딸의 소식도 아울러 전했다. 신문사에 복귀하자마자 TV부터 켰다. 진행자들은 저녁뉴스 전에 갑자기 발생한 지진에 대한 브리핑을 하느라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때마침 김기현 울산시장이 TV조선과 전화 인터뷰를 시작하고 있어서 귀를 기울였다. 울산시청 상황실에서 긴급 보고를 받던 김 시장은 “긴급재난센터가 울산혁신도시에 본사를 옮겨 첨단기기로 재난에 대비하고 있다. 밤을 새면서 상황을 파악해 시민 안전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TV에서는 요령껏 확보한 영상자료와 사진으로 지진 피해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1978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지진의 실체를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만큼 대응책을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지진은 그 해석이 굉장히 어렵고 그래서 ‘예측 불허의 영역’이라는 말도 나오는 모양이다.

이번 재난은 지진에 대한 대비책을 잘 마련하라는 자연의 준엄한 경고로 느껴졌다. 사실 더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면 그 천재지변을 누가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필자는 원고 청탁을 받으면 보통 그날 밤이나 최소한 다음날 아침에 원고를 적어 바로 송고해 왔으나 이번에는 개인적 용무로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상황이 갑자기 달라졌다. 한가위를 앞두고 경주를 진앙지삼아 전국을 뒤흔든 ‘역대 최고의 지진’이라는 불청객을 주제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무튼 이번 경주 지진이 우리에게 ‘미래를 대비하라’는 잊지 못할 교훈을 한가위 선물로 보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박정관 굿뉴스울산 편집장/ 중구뉴스 기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