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어린선생님]지식을 날품팔이로 가르쳐서는 안된다
[열정어린선생님]지식을 날품팔이로 가르쳐서는 안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0.0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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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학성고등학교 교장 안종혁 선생님
본란을 통해 소개되었던 김종한 교장(화진초등학교)과 김이헌 교장(방어진고등학교)의 가장 기억에 남는 은사님으로 안종혁 당시 국어선생님이 나왔다. 두 분 교장 선생님이 자신들이 이렇게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안종혁 선생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고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도 진실하여 찾아뵈었다. 교직의 보람을 느끼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우선 김종한 교장과 김이헌 교장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다. 이런 제자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차제에 안종혁 교장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남긴다. 017-577-5721. 제자들이 전화를 걸어주면 얼마나 반가워 할 것인가 상상이 간다.

안 선생님은 1964년에 울산과 인연을 맺었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강동중학교에 첫 부임하여 김종한 학생을 가르쳤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잘 배웠다니 오히려 고맙다는 이야기이다. 사실은 김종한 교장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1971년에 김이헌 학생을 남창고등학교에서 가르쳤다.

그 배경이 눈물겨운 것이다. 당시에는 담임교사의 가정방문이 제도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래서 남창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가정방문, 대개는 가난한 형편들을 알고 있어서 가지 않았는데 안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모두 방문하였다. 가정방문 목적은 이 학생들을 어떻게 잘 가르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공부방은커녕 책상도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사실을 교장 선생님께 보고하고 중학교 교실(다른 건물은 목조 건물이어서 화재 위험이 있으나 중학교 건물은 시멘트 건물이어서 그 위험이 덜 했다) 하나를 야간에만 빌려서 ‘자율학습’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시멘트 건물을 빌린 이유는 1970년대 초까지 남창에는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카바이드로 불을 밝혔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정집에는 석유심지를 사용하는 남폿불이 고작이었다. 이나마 밥술이나 먹는 집이지 다른 집들은 등잔불이나 깜깜한 살림이었다. 거기서 어떻게 책을 보며 공부를 할 수 있었겠는가 상상도 안 된다.

안 선생님은 저녁 10시 반경에 학생들 자율학습(안교장선생님은 자율학습의 원조라고 자랑하신다) 교실로 가서 집에 가도록 지도하였다. 이때 빼놓지 않고 가져가는 것이 ‘눈깔사탕’이었다. 눈알만큼 크다는 사탕을 한 봉지 사서 열심히 공부하던 학생들더러 먹으라고 준 것이다. 그 맛이 그렇게 좋았다고 기억한다. 이때의 자율학습반은 진학 반, 성적이 우수했던 학생들이 대부분인 반이었다. 이들의 대학진학과 육군사관학교 진학이 울산에서 화제가 되어 당시에는 사립학교인 학성고등학교로 발탁되어갔다. 그리하여 전무후무한 24년 학성고등학교 재직기록을 세우고 정년퇴임하였다. 그렇게 열심히 잘 가르쳤는데 아쉬움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다시 교직에 가면 정말 날품팔이 식으로 가르치지 않겠다고 한다. 단순 지식으로 국어의 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 하나를 가르쳐도 그 배경과 함께 철학이 들어있는 국어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아쉬워한다. 가르치는 일에는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도 건강하시지만 계속 건강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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