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뺨치는 현대차노조 현장조직
정치판 뺨치는 현대차노조 현장조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08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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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 타결을 기대했던 현대차 노사교섭이 물 건너갔다. 여기저기서 한숨소리를 낸다. 추석 특수(特需)를 기대했던 지역상인들은 벌써부터 재고걱정을 한다. 생물을 다루는 과일·생선가게는 더욱 그렇다. 조선경기 추락으로 큰 충격을 받은 지역경제가 유일하게 희망을 걸었던 곳이 현대차다. 그런데 추석 이후로 교섭이 넘어갔다는 뉴스가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맨붕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외부상황으로 구조조정을 비롯해 처절한 회생방안을 찾는 조선업은 그래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현대차 사정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다. 5월 17일 상견례를 가진 후 노사 교섭을 시작한 임금교섭은 누가 봐도 추석을 넘길 이유가 없었다. 노사 양쪽에서 무려 60명이 넘는 사람이 마주 앉아 20여 차례의 교섭을 통해 마련한 잠정안이 8월 26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이상하지 않은가. 대의민주주의 시대답게 자기들을 대신한 노조교섭위원들이 힘겹게 도출한 결과를 거부했으니 말이다.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잠정안이 나오기 바쁘게 교섭위원으로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가 ‘부결운동’을 주도한 것이다. 소위 반(反) 집행부 현장조직이 그 주역이다. 이율배반도 이런 이율배반이 어디 있나. 앞에서는 “O.K” 해놓고 뒤통수를 치는 비열한 모습. 어디선가 자주 본 것 같지 않은가. 인간이란 원래 자기에게 불리한 얘기는 귀에 더 잘 들어오게 돼 있다. 이를 ‘손실회피심리’라고 한다. “쓰레기 잠정안이다”는 식으로 합의안을 폄하시키며 “부결하면 더 따낼 수 있다”고 부추기면 웬만한 자기중심이 서지 않는 한 흔들릴 수밖에.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채운다는 말이 있잖은가.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바로 ‘집권욕’ 때문이다. 현대차 안에는 소위 ‘현장조직’으로 불리는 조직이 여럿 있다. 이들의 최종목적은 노조집행부를 장악하는 것이다.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 국민 여러분만 바라봅니다.” 이 역시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따라서 현 집행부가 조합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꿈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이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절대빈곤에 허덕이던 60년대는 이 말이 그렇게 호소력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 근로자 가운데 상위 2%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코미디도 보통 코미디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논리가 아직도 통하니…. 그것도 ‘귀족노조’라고 불리는 곳에서 말이다. 물론 말은 살짝 바꿨다. “표준생계비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이 역시 누가 들으면 혀를 찰 일이다.

“운 칠 기 삼”이라고 했던가.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시대에 현대차 밥솥으로 밥먹는 사람들은 다른 노동자들에게 비해 운이 ‘아주’ 좋은 편이다. 자동차 생산라인을 둘러본 사람이 이런 말까지 했다. “30분만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렇다면 결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첨단제품인 자동차의 개발에서 생산까지의 전 과정을 모르고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일견 사실인 부분도 있다.

GM과 도요타에 비해 아직 현대차는 한두 단계 아래로 분류되고 있다. 그런 회사도 지난 몇 년간 임금동결을 하는 등 직원들에게 고통감내를 요구하고 있다. 월급을 올려주면 당장 망할 것 같아서 그랬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의 곳간을 직접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자금력이나 기술력은 아마도 현대차보다 상당히 높을 것이다. 그런데도 호박씨를 한 입에 틀어넣고 고소한 맛을 즐겨서는 안 된다는 냉엄한 현실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기고만장했던 천년 제국 로마도 내부분열로 망했다. 노사 갈등 못지않게 노노갈등도 기업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다. 정치는 국민 수준 이상으로 못한다고 했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젠 조합원이 자기중심을 분명히 잡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집권욕에 사로잡힌 노동운동가보다는 자기 일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근로자들이 회사 성장의 주역들이다. 더욱이 돈 몇 푼에 자존심을 팔기엔 사회적 지위가 너무 올라가 있지 않은가.

<이주복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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