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와 팽두이숙(烹頭耳熟)
임금피크제와 팽두이숙(烹頭耳熟)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8.1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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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이성으로 바라보고 처리해야 할 일과 감성으로 해야 일이 있다. 예전에는 지능지수(I·Q)를 최고로 여겼다. 물론 지금도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 세상엔 감성지수(E·Q)가 더 강조된다. 많은 사람이 종횡으로 얽힌 현대사회를 살아가다보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때로는 열차 궤도처럼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난제를 만나기도 한다. 이럴 때 차가운 이성(I·Q) 보다는 따뜻한 감성(E·Q)이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현대차 임금교섭이 막바지에 온 것 같았는데 ‘임금피크제’ 확대 시행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문제는 지난해 교섭 때도 거론됐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지난해 교섭에서 노사는 ‘2016년 교섭시 합의하여 시행한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노조는 수용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합의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노조가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내 급여가 줄어드는 데 좋아할 사람은 없다. 법적으로 정년연장을 해주면서 임금피크제 실시를 주문한 정부나, 이를 시행하자는 회사 측이나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주지하다시피 임금피크제는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다. 이게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할지 필자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상징적인 부분에서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뒷 세대를 위해 앞 세대가 양보와 희생을 하지 않고는 시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년연장은 법적으로 보장해주면서도 임금피크제는 노사 타협(합의)으로 하라는 정부의 넓은 도량(?)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제도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청년(자식) 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깊은 배려가 전제돼야 한다.

벨기에 영화 ‘로제타’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알 것이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다. 주인공 로제타(17·여)는 식품공장에서 일하다 수습기간 만료와 함께 다시 실직자가 된다. 그녀에게 실업은 죽음과 다름없다. 남자친구의 잘못을 고자질해 그의 일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일자리는 곧 삶이었다. 비록 처절하긴 하지만…. 이 영화는 벨기에 사회에 많은 파장을 일으키며 ‘로제타 플랜’(2000년)을 탄생시켰다. 요지는 50인 이상이 근무하는 기업은 전체 고용의 3%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임금피크제와 달리 이 플랜은 강제성이 있었다. 어기면 매일 10만원가량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 그럼 ‘로제타 플랜’은 성공했을까. 답은 ‘아니오’이다. 낮은 처우에다, 능력 아닌 특혜로 입사했다는 사회적 낙인을 견딜 수 없었던 젊은이들이 다시 길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아무리 좋은 취지로 마련한 제도도 ‘강제성’이 개입되면 성공적인 시행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평균임금은 3천200만원이 조금 넘었다. 그 중에서 약 절반가량은 아예 세금을 안 냈다. 아니 못 냈다. 면세점(免稅點) 이하의 저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세금을 너무 뗀다”는 고임자들의 불평은 어떻게 들릴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합시다”고 제의받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불만일 수도 있다. 결코 말장난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게 세상이다. 면세근로자나 평균임금 안팎을 받는 근로자에게 임금피크를 꺼내는 것은 좀 잔인하지 않은가. 일전 방송사 인터뷰에서 “성과급 등을 받아야 1억원이 ‘겨우’ 넘는다”는 현대차지부 간부의 말은 주변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다. 그 말을 들었을 저임금 근로자나 영세 자영업자의 심정은 어땠을까. 대기업 노조도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눈을 더 넓게 떠야 한다. 그러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임금피크제 대상자는 해당 직장에서 최고 어른들이다. 원래 어른 노릇하기란 좀 어렵다. 또 본인의 자녀 중에도 취업을 못해 ‘아픈 청춘’을 보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머리를 삶으면 귀는 절로 익는다(팽두이숙·烹頭耳熟). 하세월 동안 교섭에만 매달릴 순 없지 않은가. 교섭이 막바지에 이른 것 같다. 노사는 이제 임금피크제라는 ‘머리’를 삶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무조건 따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후일 “현대차지부는 위대한 결단을 했다”는 찬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또한 성공적인 교섭으로 기록된다. 대승적 차원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임금피크제 수용은 I·Q가 아닌 E·Q로 받아들일 대승적 차원의 문제다. 현대차지부의 결단이 요구된다.

이주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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