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다거(喫茶去)- “차 묵고 가라”
끽다거(喫茶去)- “차 묵고 가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7.05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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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안강읍 육통리에 자리한 신라 제42대 興德王(흥덕왕, 826~836 재위) 능을 찾았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차인단체 대표 몇몇과 함께 헌다(獻茶)했다. 차인이면 선덕왕을 이어 차 문화를 확장 발전시키는 데 일조한 흥덕왕을 찾아봐야 한다는 명분에서였다.

흥덕왕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온 김대렴(金大廉)이 가지고온 차 씨를 지리산 쌍계사에 심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는 날이 공교롭게도 벌초를 막 끝낸 직후여서 능은 깔끔했다.

돌아오는 길에 차와 관련이 있는 벽화가 있는 경주 함월산 자락의 기림사 약사전을 기꺼이 찾았다. 약사전 실내 벽에는 사라수왕이 승열 바라문이 지켜보는 가운데 광유성인에게 헌다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헌다 벽화는 불당 왼쪽 상단에 위치해 있다. 벽화를 마주하자 맘속에서 ‘병든 사람 지극정성 급수봉다(汲水奉茶) 하였는가?’라는 말이 반복하여 되새겨졌다.

왜 하필이면 약사전에 ‘급수봉다’일까? ‘범부가 어리석어 병의 뿌리가 깊어 약사불을 만나지 않으면 죄를 멸하기 어렵습니다(凡夫顚倒病根深 不遇藥師罪難滅)’라는 약사전 예불 문에서 실마리를 찾았을 수 있다.

오랜 역사에 걸맞게 한국 불교는 많은 문화유산을 전하고 있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차 역사 역시 그러하다. 다반사(茶飯事),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항다반사(恒茶飯事) 등 비슷한 표현은 차 마시는 일이 밥 먹는 일과 같이 일상에서 늘 일어나 대수롭지 않다는 의미로 쓰인다.

차는 불교 의례 혹은 의식에서도 관심을 두면 쉽게 엿볼 수 있다.

상단(上壇)의 다게(茶偈=범패의 곡목, 제단에 차나 물을 공양할 때 부르는 소리)는 ‘저희들이 올린 깨끗한 물을 감로차로 변하게 하여 삼보 전에 올리오니(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三寶前)’다. 그때그때 차를 다려 올릴 수 없어 청정수를 감로다로 올립니다’로 해석해도 되겠다. 상주권공재 다게에서는 ‘금장감로다 봉헌삼보전(今將甘露茶 奉獻三寶殿)’이라 하여 처음부터 감로다를 봉헌하고 있다.

신중단의 다게에서는 ‘청정명다약 능제병혼침(淸淨茗茶藥 能除病昏沈)’이라 하여 명차가 혼침의 병을 능히 제거하는 약으로 쓰임을 알 수 있다. ‘청정한 명다의 약은 (맑은 차를 올림) 능히 어리석음의 병을 제거하나니’ 지환도인(智還道人)이 지은 의전서(儀典書)인 『수륙의문(水陸儀文) 범음집(梵音集)』을 보면 사구재(四九齋)를 지낼 때 재자(齋者)가 위패를 모시고 영단(靈壇)에 나가서 다기에 다를 따르면 법주는 “백초임중일미신 조주상권기천인 팽장석정강심수 원사망영헐고륜 원사고혼헐고륜 원사제령헐고륜(百草林中一味新 趙州常勸幾千人 烹將石鼎江心水 願使亡靈歇苦輪 願使孤魂歇苦輪 願使諸靈歇苦輪)”이라며 다편(茶偏)을 송(頌)한다. 의미를 새겨보면, ‘백초(百草) 중에 뛰어난 차나무여 조주(趙州) 스님이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했구나.

강심수(江心水)를 돌솥에다 끓여 영단(靈壇)에 바치니 원컨대 고륜(苦輪)에서 헤어나소서’이다.

차는 망령, 고혼 등 모든 영가를 편안하게 쉬게 하는 백 가지 풀 가운데 으뜸이며, 그래서 조주 스님이 항상 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교와 차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 차는 불교와 함께 전래되었고 불전에 올리는 중요한 공양물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수행자들로서는 머리를 맑게 하고 잠을 쫓아주는 덕에 자연스럽게 가까이하게 되었다.

불가에서는 정신을 맑게 하고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지혜를 증장시켜 각기 해탈을 얻게 하는 약으로서 차를 가까이 한다. 특히 육법공양물 중에 등불과 향과 차를 대표적 3대 공양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다. 관음보살은 청정수를 감로병에 담아 감로다로 변하게 하여 마군(魔軍)을 물리치며 도량을 청정하게 한다. 또한 차는 선과의 만남으로 ‘다선일치’(茶禪一致) 사상이 완성됨으로써 일상적 생명력을 가진 선다(禪茶) 문화를 형성했다.

불가(佛家)에서는 큰스님들의 탄신일 또는 열반일에 지내는 제사를 다례(茶禮)라고 부른다. 특히 음력 4월 8일 석가모니 부처님 오신 날 차(茶)를 올린다는 기록이 선원(禪院)의 청규를 담은 백장선사(百丈禪師.720 ~814)의 <백장청규> 권2, 「불강탄(佛降誕)」조에 “향화등촉(香花燈燭)과 다과(茶菓)와 진수(珍羞)를 올리고 공양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즉, 주지가 상단에 처음 향을 올리고 삼배를 하며, 다시 향을 사르고 점다(點茶=차를 내는 일)를 한 뒤 삼배를 하고 나서 방석을 걷는다’라고 불단의식 중에 다사(茶事)가 나온다.

다양한 사례에서 짐작하듯이 ‘존경하여 드리는 헌다 의식’은 불가의 다례에서 출발해 점점 다반사(茶飯事)라는 일상적인 형태로 대중화되었다고 하겠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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