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가도와 재벌투쟁
정명가도와 재벌투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6.1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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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명분없는 전쟁이었다.

오죽했으면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말을 탄생시켰을까.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니. 조선 땅이 무슨 유휴지도 아니고. 결국 임진왜란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인 야욕이 근본원인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조금 철학적으로 들여다보면 인간세상의 괴상망측한 이치 하나를 터득할 수 있다. 바로 평화(平和)와 적(敵)의 이상한 함수관계가 그것. 사실 임진왜란은 일부러 적을 만든 것이다.

적이 없어야 평화로울 테지만 적이 있어야 뭉치기가 쉬운 법. 실제로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명을 적으로 만들어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원래 그렇다. 외부의 적은 내부의 결속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정명가도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런 면에서 최근 현대차 노조의 해묵은 재벌투쟁은 정명가도의 논리와 다소 닮은 구석이 없지 않다. 다시 말해 적을 만들어 내부의 결속을 다지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현재 민노총 주도로 나선 재벌개혁투쟁에 선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올해 임금협상에서 노조의 태도는 최악이다.

회사의 고유권한인 승진거부권을 요구한 것은 고용보장과 관련해 그럴 수 있다 쳐도 고용노동부의 단협 개정 권고사항 등과 관련해 회사가 요구사항을 설명하려하자 집단 퇴장,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교섭은 ‘협상’이지 ‘권리’가 아니다. 게다가 이미 복직됐는데도 3년 넘게 출근을 자진 거부해온 조합원의 복직을 올해 요구안에 넣어 내부 조합원들조차 속된 말로 벙찌게 만들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쩌면 노조에겐 거대한 적이 필요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를 ‘대립’으로만 보는 건 이젠 촌스럽다. 여전히 상호 견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무조건 대립적으로 보는 건 안 된다. 더욱이 현대차처럼 처우가 좋은 곳은 이젠 협력이 더 세련돼 보인다.

‘어벤저스’나 ‘저스티스리그’라고 해서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도 서로 힘을 합치는 게 요즘 대세다. 노사가 서로 적은 아니지 않는가.

가뜩이나 요즘처럼 불황이 활개를 칠 때 대한민국 노조의 맏형으로서 불황이라는 적에 맞서 회사와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멋질까. 4만8천 조합원들의 진정한 힘도 거기서 나오지 않겠는가.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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