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아, 철아, 우리 철아”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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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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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2년이 지날 즈음 부채 누적 시작돼
큰 아들로 인해 병원 운영 제자리 찾아

‘종합병원을 운영하다보니 개인의원을 개업하던 시절에는 겪지 못한 일들이 많이 닥쳤고, 그 때마다 밤잠을 설치며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 노력했지만 개원 2년이 지날 즈음부터는 부채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병원을 지으면서 생긴 부채에 운영상의 애로까지 겹치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1983년 후반기부터 1987년 초까지 약 5년 동안 병원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다급해진 나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뛰며 은행은 물론 사채까지 변통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아내까지 돈을 융통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1984년부터는 직원들의 봉급조차 제때에 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1985년 어느 날에는 당좌계정을 제때에 못 막아 일시적인 부도사태까지 가서 금융기관으로부터 yellow card, red card까지 받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며, 이 제재조치를 풀어내는 데에 근 일 년 반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다행히 1987년 하반기부터 병원 운영이 제자리를 찾고, 재정적 어려움도 한 시름 덜었다.

병원 운영이 원활해진 데에는 기획실장으로 있던 큰 아들 박정국의 힘이 컸다. 정국이가 병원의 전반적인 업무를 기획, 조정하기 시작하자 내 어깨의 무거운 짐이 조금씩 덜어졌고, 큰 아들로 인해 병원 운영이 정상을 되찾은 것은 보기에도 좋았다. 운영이 안정되고 재정적 어려움도 한 시름 덜자 병상을 확대하기 위한 공사를 추진했다.

병원 건립당시 남아있던 서쪽 자투리땅에 별관을 짓기로 하고 여러 공사를 거쳐 1988년에 완공했다.

설립초기의 몇 년 동안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은 후로는 대체로 순조로운 운영을 하며 지역의 대표 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을 하며 1990년에 들어 큰 아들 박정국이 이사회의 재청으로 상임이사로 임명되어 병원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다.(편집 주: 2007년 5월 23일 돌아가시기 전에 구술로 씌어진 자서전에서는 아직 이사장이 아니었다).

1993년 들어서는 신관을 증축하고 응급의료센터를 개설하며, 입원실을 더 갖췄다. 그리고 2000년에는 우리 병원 맞은편에 있던 리버사이드 호텔을 매입하여 개, 보수를 마치고 2000년 6월 13일 동강 한방병원을 개원했다.

동강한방병원 지하에 울산 최고의 영안실을 갖춰 울산시민들에게 새로운 장례문화를 전파시키는 역할을 하며 양방, 한방 협력체계로 좀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울산 시민들은 내가 설립한 동강병원을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이용하고 있다. 동강병원은 내 일생이 고스란히 함축된 내 삶의 증표이다.

일제강점기와 6·25 동란을 겪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구사일생으로 넘기고 지뢰밭을 걸어 살아 돌아온 나의 험한 삶에 한 점 햇살 같은 존재이다.’

<동강 선생 미출간 자서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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