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와 등불
붓다와 등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6.0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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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부처님 오신 날 하루 동안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혹시 잘못 이해하여 하루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숫제 굶는 것으로 생각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올 석탄일 아침 공양은 집 가까이에 있는 사찰에서, 그리고 점심은 장소를 바꾸어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시내 오피스타운이 즐비하게 둘러싼 사찰에서 공양을 했다. 또 저녁은 거기에서 다소 떨어진 곳으로 법정스님의 혼이 깃들어 있는 맑고 향기로운 사찰에서 공양했다. 더군다나 사찰음식은 소화가 잘 되는 채식이라 뭔가 부족한 느낌이어서 저녁 이후에는 또 칼국수까지 먹고 충족한 하루를 보냈다.

2천500여 년 전 붓다가 출가하여 수행을 할 때 분소의(糞掃衣)를 입고 다니면서 새가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을 정도의 미량으로 감내했다. 그것에 비하면 필자는 이렇게 네 끼를 든든히 먹었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심(恥心)에 사로잡힐 뿐이다.

그러나 여기저기 사찰을 찾으면서 시주하고 소원을 이루도록 연등을 달고 기와에 정성스레 기명하여 불사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마음 한구석의 부끄럽고 황송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메울 수 있었다.

한편으로 필자는 이날만큼 붓다가 된 것인 양 속세의 한가운데를 마음껏 드나들면서 활보한 듯하다. 그러는 사이 속세에서 일어나는 많은 기쁨과 평안함도 만끽했지만 반대로 말할 수 없는 가긍한 광경을 느닷없이 보기도 했다.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큰 사찰 입구에는 석탄절을 맞이하여 많은 대중 신도들이 줄지어 출입하고 있었다. 입구 양편에는 걸인뿐만 아니라 중증 장애인, 하물며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거무추레한 아기엄마까지 마냥 길바닥에 주저앉아 구걸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 한편 가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붓다의 ‘자비로운’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다. 붓다가 출가하여 수년이 지난 어느 날 기원정사에 계실 때다. 국왕이 붓다의 고귀한 설법을 듣기 위하여 붓다를 진중히 초청한 일이 있다. 국왕은 붓다를 맞이하는 행차길이 너무 컴컴하여 만개의 등불을 달도록 명한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을에는 가난한 여자(빈녀)가 살고 있었다. 존엄한 붓다가 이곳으로 행차하신다고 하니 그녀도 등불을 간절히 달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가난하여 등을 구입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여기저기를 찾아 동냥하여 겨우 작은 등불 하나를 달게 되었다.

붓다의 설법이 끝나고 수많은 등불은 모두 꺼져 주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저 멀리 빈녀의 조그마한 등불은 아직 가물가물 꺼지지 않고 있으니 수제자 아난이 붓다에게 말했다. “세존! 저기 작은 등불 하나가 아직 켜져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등불을 끄려 하자 붓다는 “아난아! 이 세상의 모든 등불은 꺼져도 저기 빈녀의 작은 등불만은 절대 꺼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빈녀가 너무나 간절한 정성으로 등불을 밝힌 것이라 오래 동안 켜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복잡다단한 일들을 간단히 해결해 주는 분은 바로 붓다이다. 이러한 훌륭한 능력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붓다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6년의 고행 끝에 세상의 무익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터득한 후, 나이란자나 강가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용맹스레 정진했던 것이다. 그 결과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모든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자유로운 성자가 된 것이다.

속세에 사는 우리 중생들은 붓다의 마음을 모두 쫓아갈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백만 분지 일이라도 그 마음을 쫓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면 우리가 사는 이 대지가 행복스럽고 아름다운 정토가 될 것인데 말이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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