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 실패 ‘자인’하는 공동투쟁
산별노조 실패 ‘자인’하는 공동투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5.2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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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노조를 비롯한 10여 개 계열사 노조가 오늘 서울에서 만난다. 장소는 현대기아차 본사가 있는 양재동. 공동교섭 요구 및 공동투쟁 선포식을 하기 위해서이다. 참석자들은 자칭 ‘확대간부’라는 집행부 상근자들과 대의원들이다. 이번 공동투쟁을 주도하는 곳은 금속노조다. 금속노조 핵심사업장인 현대기아차노조는 계열사 노조까지 끌어들여 지난달 29일 공동교섭 상견례를 요구했다. 평소와 달리 노조가 ‘먼저’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기다렸다. 허나 시쳇말로 ‘바람’만 맞았다. 사측이 콧방귀도 안 뀌었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노조는 몇 번 더 요청을 했으나 사측은 응하지 않았다. 법적으로도 공동교섭에 응할 이유가 없는 교섭에 왜 나가느냐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회사가 공동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자 노조는 “10만 노동자를 모으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아마 이 같은 말은 이번에도 또 나올 것이다. 웬만한 자치단 군(郡)의 인구보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 모으겠다니, 과연 대단한 노조임에 틀림없다.

현대차노조(지부)가 공동투쟁을 주도하는 데 대한 반발도 만만찮다. 현장 내 몇몇 조직에서는 “되지도 않은 일을 왜 하느냐?”며 “우리 일(교섭)이나 잘 하자”고 했다. 그들은 또 “공동교섭·공동투쟁은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는 데 왜 또다시 하느냐?”며 집행부를 질타하기도 했다. 그들은 또 “기아차노조는 아직 교섭 요구안도 마련하지 않았다”며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노조가 공통투쟁을 고집하고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엔 먼저 ‘산별노조 실패’에 대한 불안감 내지 자괴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현대차지부가 금속노조에 가입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가입에 성공하고, 현 지부장이 초대 금속노조 수장까지 되었다. 꿈에서도 차마 잊지 못할 자리였다. 그러나 밑돌과 윗돌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탄탄한’ 산별노조를 구축하려고 했으나 재미를 못 봤다. 가입사 노조들의 규모와 처지가 너무 천차만별이었던 탓이다. 요구안 하나도 이 노조에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만 저 노조에게는 꿈같은 얘기가 될 정도였으니 더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공동투쟁도 그렇다. 두 노조 조합원이 누리는 혜택과 계열사를 비롯한 여타 고만고만한 노조의 조합원들이 처한 현실은 차이가 너무 컸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겠는가. 이번 공동투쟁을 두고 “또 다시 그들만의 리그전을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결코 단순한 비아냥거림이 아니다.

특히 올해의 교섭환경이다. 산업수도로 불릴 만큼 잘 나가는 기업들이 많은 울산조차 심상찮다. 가사(假死) 상태에서 겨우 깨어난 대기업 몇몇은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인력을 내보냈거나 내보내고 있다. 이러니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처한 입장은 어떻겠는가.

그마나 상대적으로 좀 낫다고 여겨지는 자동차산업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안심하고 있을 처지가 못된다. 리먼 사태 직후인 지난 2009년 상황보다 더 악화된 부분도 많다. 너무 앞서가는 얘기가 될지 모르나 노조가 “파업하겠다”고 엄포를 놓아도 과연 회사가 겁을 낼까 싶다. 오히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노조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관철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현대차지부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니 조합원들에게 잔뜩 기대심만 부추긴 마당에 뭔가 ‘액션’은 취해야 할 입장에서 ‘공동’이란 그럴 듯한 포장을 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해도 면피의 명분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팩트)만큼 힘이 센 것은 없다. 아무리 좋은 방안도 나의 위치와 처지를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발밑을 조심하라”고 했다. 공동투쟁 깃발을 들기에 앞서 내 현실을 먼저 살펴야 한다.

노조도 이 나라 경제주체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기온은 날로 올라가고 있지만 경기는 하루하루 식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주복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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