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당파 멀리한 목민관, 오늘날 필요한 인물”
“이념·당파 멀리한 목민관, 오늘날 필요한 인물”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6.05.2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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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익 울산현대법무사 합동사무소 대표
 

울산의 현직 법무사가 소설을 썼다. 그것도 267쪽짜리 장편 역사소설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울산법무사회 제2대 회장을 3년간 역임한 최대익 법무사(68·울산현대법무사 합동사무소 대표법무사). 그는 오는 28일 오후 3시부터 1시간 동안 롯데백화점 지하 1층의 서점 ‘반디 앤 루니스’에서 가까운 지인과 독자들을 모시고 조촐하게 ‘작가사인회’라는 행사를 갖는다. 초대장에는 ‘화환이나 축의금은 사절’이라고 미리 못질을 해놓았다.

‘노비재상’ 반석평의 삶과 사랑 그려

소설 이름은 ‘백성의 종, 반석평’이다. 반석평(潘碩枰, ?∼1540)이라면 노비 출신으로 재상의 반열에 올라 신분상승의 전설을 완성시킨 조선조 연산군∼중종 대의 입지전적 실존 인물이다. 작가 최대익은 책 말미의 ‘저자 후기’에서 반석평에 대해 이렇게 간추린다.

“…관직 생활 내내 노비 출신이라는 주변의 시기와 모략을 이겨내고 팔도 관찰사를 모두 역임한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로서 형조판서를 거쳐 정일품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 권력을 지향하지 않은 청렴함과 문무를 겸비하고 백성을 사랑한 그를 당대 최고 학자였던 조광조도 높이 평가했으며, 북방 외교 문제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에는 중종도 의지했다. 이념과 당파에 치우치지 않으며 겸손함과 통찰력으로 백성에게 다가간 목민관 반석평이 오늘날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작가는 이런 말도 덧붙인다. “공부하고 싶은 종의 열망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조선시대 신분의 장벽마저 뛰어넘어 마침내 재상으로 우뚝 선 그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직계 조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러나 대답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그렇다고 반기문 총장의 거취를 미리 의식해서 집필한 건 아닙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이라면 올해 말로 임기가 끝나는 세계적인 고위직 명사다. 동시에 ‘충청 대망론’을 등에 업은 유력한 차기 대선 예비주자의 한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반(潘)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역사소설은 오해를 살만 하고 시비의 소지도 없지 않다.

하지만 품성이 착한 작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로 했다. 집필의 배경을 작가 스스로 풀어냈다.

 
“소설 집필, 潘총장 의식한 건 아니죠”

“솔직히, 나이 탓이겠지요. 몇 해 전부터 새벽잠 설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까운 시간들을 그냥 보내기도 그렇고. 궁리 끝에 ‘옛날부터 좋아하던 책이라도 읽자’. 그래서 파고든 것이 역사 속의 인물이었고, 내친김에 소설을 내가 직접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까지 먹게 된 거지요.”

글쓰기는 고등학교 졸업반 때 교지에다 제법 길다 싶은 시 한 편을 올린 게 고작이다. 지금 생각해도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책읽기를 즐기는 습관만은 변하지 않았다.

소설에 대한 구상을 어렵사리 끝냈다. 용기는 자가충전(自家充塡) 식으로 불어넣었다. 집필은 지지난해(2014년) 9월부터 손을 댔다. 300쪽 분량의 글은 근 1년간의 씨름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40%가 사실(史實, fact)이고 60%는 픽션(fiction)이라 했다.

“소설의 주인공 반석평은 야사(野史)에도 많이 등장한 인물이지요. 후기(後記)에서도 적었지만, 제 소설에 인용된 자료들은 이상각 선생의 저서 ‘조선노비열전’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헌법재판관 지낸 고교친구 도움 커

무명작가(無名作家)의 원고를 소설책으로 펴내기까지에는 고등학교 동기 김종대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전 헌법재판관)의 도움이 사실상 컸다.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장도 지낸 김 위원장은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저서를 세 권이나 집필할 정도의 충무공 마니아다. (‘대항해시대의 국가지도자 이순신’(2015.8)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2015.9),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2014.7)가 그의 저서다.)

김 위원장은 법무사 친구의 탈고(脫稿) 사실을 평소 잘 아는 서울의 출판사 사장에게 귀띔했다. ‘써놓은 것 있으면 한 번 보여 달라’는 연락이 돌아왔다. ‘법무사 최대익’이 ‘작가 최대익’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이기도 했다.

“무명작가라면 출판사가 처음부터 외면할 수도 있었는데…” 아마추어 작가 최대익은 자신의 등단(登壇)이 친구의 도움 덕분이라는 사실을 굳이 감추려 하지는 않았다.

이번 5월에야 바깥세상으로 나온 ‘백성의 종, 반석평’은 ‘도서출판 가디언’을 통해 전국 서점가의 신간 코너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울산에서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의 특별코너에서 선보이고 있다. 책이 팔리면 인세(印稅)는 하한선인 8%만 받기로 출판사와의 합의도 마쳤다. 그 대신 홍보는 출판사가 맡아주기로 했다.

작가 사인회는 그런 정황 속에서 기획됐다. 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앞선 것은 물론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부산의 지인들이 찾아오겠다는 것도 애써 말렸다. 고등학교 1학년 3반 시절 단짝처럼 친했던 국회의장 정의화에게는 소설책 펴낸 소식을 알리지도 않았다.

부산지법울산지원 개청 준비로 다시 인연

최대익 신예작가는 태어난 고향이 경주시 감포다. 하지만 어릴 적엔 울산서도 살았고 처가 주소는 본디부터가 울산시 중구 학성동이다.

울산과의 연이 더욱 깊어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 개청 준비위원으로 오게 만든 1982년 7월 1일자 인사발령이었다. 경제학 전공을 살려 입사한 첫 직장은 롯데그룹이었지만 중간에 진로를 수정했다. 일반직 공채를 거쳐 법원 업무에 투신한 것이다.

법원 근무에 마침표를 찍었던 1990년, 곧바로 법무사사무소 개업을 서둘렀다.

3년 임기의 제2대 울산지방법무사회 회장 취임한 때는 2000년 4월. 또다시 16년이 지난 지금은 회원 수 140명을 헤아리는 지역 법무사 업계의 지형도도 참 많이 변했다. 약 5년 전부터 공채 바람이 분 탓에 신진들의 참여가 몰라보게 늘었다. 이른바 ‘젊은 피 수혈’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법원, 검찰 출신 노·장년 세대와 공채 출신 신진 세대가 한솥밥을 먹기에 이르렀다. 세대 공존(世代共存)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그보다 더한 변화의 바람도 불어 닥쳤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개업이 눈에 띄게 늘면서 법조계에 부는 ‘덤핑 바람’, ‘탈영역(脫領域)의 바람’이 여간 거세지 않다는 것이다. 변호사법과 법무사법상의 규제의 차이에서 오는 불가항력적 현상으로 풀이했다.

“남자 손님을 미장원에서 앗아가는 바람에 주눅이 든 이발소에다 비유해도 괜찮을까요?” 그러면서 쓴 웃음을 짓는다.

세태변화 절감… 여권신장 두드러져

변한 것은 법무사 업계만이 아니다. 세태도 빠른 속도의 변모를 보인다. 그래서 느낌이 많다. 특히 남녀 사이의 권리역전(權利逆轉) 또는 양성평등(兩性平等) 현상은 손에 잡힐 정도로 뚜렷해져 간다. 집 한 채를 사더라도 50%씩의 지분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공동등기’를 선호하는 경향이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요즘 부부 사이의 문제로 법무상담 하러 오시는 분들 보면 남자 분들이 불쌍해 보일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한마디로 여권신장(女權伸張)이 두드러졌다는 이야기다. 옛날 같으면 참고 견디며 지냈을 일도 요즘은 시쳇말로 ‘보따리 싸서 집 나가기’를 예사로 여긴다는 것이다.

최근엔 법이 바뀌면서 개명(改名) 민원은 대부분 법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항렬(行列)을 고수하는 관습은 현저하게 줄었다. 순우리말 이름이 부쩍 늘어난 것에서도 세태의 변화를 감지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일관된 흐름이 엿보인다. “‘이런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면서 법원에서 대는 명분은 대부분 그럴싸해 보이지만 꼭 그런 것 같진 않습디다.” 이야기인즉슨 점집이나 철학관을 갔다 와선 돈벌이 잘 되라고, 자식 잘 되라고 이름을 바꾸러 든다는 얘기였다.

1년 연하의 부인 이옥사 여사(67, 사단법인 한국차인연합회 부회장)의 사이에 2녀 1남을 두고 있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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