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추진하는 조선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구조조정 추진하는 조선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5.1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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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 조끼를 입은 경비원 몇 명이 공장을 지키고 있었다. 맞은편 세진중공업에서 들리는 희미한 망치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울산 울주군 온산읍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온산공장은 2016년 4월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2014년 말부터 해양설비 수주가 한 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작업하는 노동자들로 넘쳤던 ‘야드(작업장)’는 자재가 쌓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비어 있었다. 멀리 보이는 펄프공장에서 하얀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빈 야드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공장이 잘 돌아갈 때는 한 800여명 이상 있었는데 지금은 물건 나르는 사람과 경비원 해서 한 20명 남아 있습니다. 물건을 재어놓고 창고처럼 쓰면서 앞으로 뭘 할 건지 구상 중이지만 뭐가 들어올지는 결정된 게 없습니다.” 이곳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이 말했다. 경비원은 “관리감독 하는 사람 빼고는 전부 하청업체에서 와서 일했다. 지금은 하청업체들이 다 나가 버렸다”라고 덧붙였다.

이 공장은 울산 동구 방어동에 위치한 해양플랜트사업본부가 넘치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추가로 확장하여 지은 곳이다. 지금은 본부도 위태롭다. 비바람이 치던 2016년 4월 27일에 찾아간 꽃바위 일대는 어쩌다 보이는 노동자 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을씨년스러웠다. 해양 쪽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해양플랜트 사업본부 인근 꽃바위의 원룸은 현재 건물마다 빈방이 최소한 한두 곳, 많으면 두세 곳이다. 방 하나에 거실 하나가 딸린 ‘투룸’은 보통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5만~70만원을 호가했지만 이제는 40만~45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방을 구하려는 사람이 없다.

이 지역에서 5년째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 방이 없어서 작업자들이 현대중공업 본사가 있는 전하동에 방을 구해서 출퇴근했다. 전에는 여기서 잘리면 거제로 갔다가 다시 오기도 했는데 이제는 사람이 빠지기만 하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손님이 없어서 2016년 4월 들어 계약을 한 건도 못하고 있다”라고 지금 분위기를 전했다.

꽃바위 인근에서 만난 해양 부문 직원은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전반적으로 정말 사람이 없다. 회사 안에서 식사할 때도 느껴진다. 점심시간에도 옛날처럼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많아서 사내식당을 3교대로 운영하던 공장이었다. 저녁 시간을 준비하던 본부 인근의 곱창집 주인은 “매출이 엄청나게 줄어 3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래도 여기는 해양 사업장이 가까워 좀 나은데 이 밑으로 내려가면 가게들이 다 죽었다. 주인들이 몽땅 바뀌었다. 직원들이 회식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한 달에 한 번도 올까 말까다”라고 말했다.

가동이 중단된 울산 울주군 온산읍 현대중공업 온산공장.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방침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실업대란이 점쳐지고 있다. 조선업계의 중심축인 동남권 벨트 현장에서는 이미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 노동자들이라 언론에 조명되지 못했을 뿐이다. ‘사라진 노동자’들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에 따르면 2014년 11월 4만1천19명이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는 2015년 12월 3만6천338명, 2016년 3월 3만3천317명으로 1년4개월 만에 7천702명이 줄었다. 같은 기간 정규직 노동자가 2만6천841명에서 2만4천895명으로 1천946명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구조조정된 1천500명 외에 정년퇴직에 따른 감원이 매년 1천 명 수준으로 자연발생 한다는 노조 설명을 감안하면 정규직은 거의 변동이 없는 셈이다. 특히 ‘수주절벽’이 현실화된 해양 부문은 일터에서 사라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많았다. 같은 기간 줄어든 하청 노동자의 68.6%가 해양 부문 소속이다. 조선 부문도 1천423명이 줄었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지회장은 “현대중공업이 3천명을 구조조정 한다고 언론들이 보도하는데 이미 8천여 명이 잘려나간 하청 노동자 입장에서는 허탈하다”라고 말했다. 하 지회장은 “원청이 업체들 기성대금을 깎아 폐업시키고 나가게 하는 것이 마치 개별업체의 폐업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음에도 구조조정이라는 말조차 거론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지회에 따르면 물량이 없는 해양 부문의 직영 하청 비율을 1대2 비율로 맞추겠다는 것이 회사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8천 명 정도가 더 줄어들 것으로 지회는 보고 있다.

조직화된 노동조합 소속 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대란’이 예상되면 상경투쟁도 하고 기자회견 도 한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이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지회장은 “대응이랄 게 거의 없다. 일부는 임금체불로 저항을 하다 타 업체로 이관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또 그 업체에서 못 받았던 걸 다 체당금(기업이 여력이 없어 국가가 대신 한도 내에서 지급하는 임금)으로 신청해놓은 상태다”라고 전했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그래도 노조에 도움을 청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하 지회장은 “노조활동을 하면 두 번 다시 조선소 밥 못 먹는다는 공식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성제 울산타임즈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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