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진용신제’ 동참기
‘가야진용신제’ 동참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4.0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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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양산시 지역에는 낮 12시부터 1∼4mm의 비가 온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었다. 같은 날 오전 9시30분부터 낙동강변인 양산시 원동면 용당마을 가야진사에서는 ‘가야진용신제보존회’(이사장 김진규)가 마련한 2016년도 ‘제19회 가야진용신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식전행사(북놀이, 민요, 양산학춤)를 시작으로 부정가시기, 칙사맞이, 용신제례, 용소풀이, 사신풀이의 순서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칙사’ 역을 맡은 나동연 양산시장이 칙사 대기 정자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양산학춤 공연이 끝날 무렵(10시경)에는 가랑비가 간간이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니 관중 일부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러나 주최 측이 발 빠른 대응으로 미리 준비해둔 비옷을 나누어주자 분위기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그 뒤로도 비는 오락가락 했지만 제의는 원만하게 진행됐다. 용신제의 마지막 의식인 ‘침하돈(沈下豚=돼지를 물속에 던지는 의식)’을 끝으로 용소풀이는 끝이 났다. 하지만 뒤풀이 행사는 빗방울이 굵지는 바람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금년같이 가문 날에 칙사님을 모셔다가 용신제를 지내보세/ 영험하신 용왕님이 비를 내려 주실는지…”(칙사맞이 굿 중의 ‘길닦이 소리’)라는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야진용신제(伽倻津龍神祭)’는 기우제의가 그 중심에 있다. 그런데도 이날 관중은 대부분 내리는 비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가야진용신제는 1997년 경상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됐다. 18회까지 매년 5월 5일에 거행했으나 어린이날과 겹친다 해서 올해부터는 날짜를 매년 4월 첫째 주 일요일로 변경했다.

황산강(黃山江=양산 구간 낙동강의 옛 이름)의 가야진은 토지하(흥해), 웅천하(공주), 황산하(양산), 한산하(서울) 등 천신제와 풍년기원제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 4곳 중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네 방위를 낙동강(洛東江), 대동강(大洞江), 한강(漢江), 용흥강(龍興江)으로 정해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현재는 양산의 가야진용신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가야진사(伽倻津祠)는 천태산(天台山)을 배산(背山)으로 황산강을 임수(臨水)로 해서 자리를 잡았다. 진사 앞 황산강 건너편에는 고봉(高峯)처럼 생긴 ‘용산’이 있고, 이 산의 행정구역은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이다. 용산 자락이 맞닿은 강은 깊이가 27m나 되고 ‘용소’라고 부른다.

가야진용신제는 옛날부터 용소에 용이 살고 있다는 마을사람들의 믿음에 바탕을 두고 전해 내려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진사가 헐리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용신제는 용당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국의 강에는 대부분 ‘용소’라는 곳이 남아있다. 용소는 저수지가 확보되지 않았던 시대에 가뭄이 계속될 때 기우제를 지내던 장소이다. 필자는 민속학을 전공한 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이날 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본 결과를 바탕으로 몇 가지를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명칭을 가야진용신제희(伽倻津龍神祭戱)로 바꿀 필요가 있다. 제 의식은 홀기에 의한 제의(祭儀)를 말하고, 제희(祭戱)는 의식의 앞과 뒤에 ‘화합과 소통’의 장이 마련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용신제는 제의만 거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의 장도 첨가·추가돼 있음을 주목하자는 이야기다.

둘째, ‘침하돈’ 의식에 사용되는 돼지는 나무를 깎고 검은 칠을 해서 만든 목각돈(木刻豚)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수질 오염과 정서적 오해로 민원이 제기될 소지가 있어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요즈음 침하돈은 용신에게 바치는 헌물이라기보다 용소를 오염시키는 물질로 인식되기 쉽다.

셋째, ‘부정가시기’의 역할은 남성 혹은 무속인이 맡아야 더 설득력이 있다. “제례일 3일전부터 제관들은 목욕재계하고 제단 내외를 청소하며 제향 준비를 한다.”(부정가시기)는 용신제의 구성 내용에서처럼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는 것이 더 좋았다. 굳이 연희 시간을 늘리고자 한다면 기로(耆老)를 모시고 쇄수(灑水) 의식을 거행해야만 사방 벽사 의식의 객관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

넷째, 시대적 스토리텔링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2016년 가야진용신제 팸플릿 가운데 ‘용산 용소, 용의 전설’ 중에는 “…용소로 와서 남편용과 첩용이 싸움을 할 때 첩용인 청용을 죽여주소…”라는 표현이 나온다.

기존의 용의 전설은 남편인 황용과 첩인 청용 사이에 본처인 또 다른 청용이 나타나 질투하는 것으로 돼 있다. 나동연 양산시장이 바라는 대로 가야진용신제가 30만 양산시민의 ‘화합과 소통의 장’으로 확대발전하고 더 나아가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를 기대한다면 ‘하자’가 아니라 ‘해야’ 한다. 또한 ‘바로잡자’가 아니라 ‘바로잡았다’로 실천이 이어져야 한다.

용신제가 막을 올린 지난 3일 기상청은 양산의 일일 강수량이 2.5mm였다고 전했다. 용신제의 효과가 곧바로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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