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와 ‘귀향’
영화 ‘동주’와 ‘귀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3.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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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와 ‘귀향’이 흥행에도 성공하고 있다고 한다.

저예산 영화임에도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스크린을 지배하고 있는 영화시장에서 용케도 살아남은 것이다.

두 영화는 모두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은 모두 일본이 일으켰다. 결국 일본의 패망으로 결론이 난 이 전쟁에는 일본 국민들도 동원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도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천황제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국민이 국가시책에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피해의식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패전한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한 것은 미국이었다.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일본이 다시는 전쟁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새헌법에 삽입시켰다.

1946년에 개정된 일본국헌법의 제9조는 ‘전쟁의 방기(放棄)’를 선언한 조항이다.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한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서 영원히 이를 방기한다’라고 명시한 데 이어 ‘육해공군 등 전력을 갖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지금 일본의 총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바꾸고 싶어 하는 헌법 내용이 바로 이 조항이다. 아베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은 1955년 창당되면서부터 개헌을 목표로 했다.

미국도 사정이 달라졌다. 일본의 재무장은 미국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일본도 엄연한 주권국가이다. 그런 일본이 자체 국방력을 보유하고 방위를 위한 전쟁에는 대비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개헌을 아직도 반대하는 세력은 일본 국민이다. 일본 국민들에게 전쟁은 강한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항상 야당에게 개헌저지선인 3분의 1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줬다.

일본에서 태평양전쟁을 되돌아보는 콘텐츠들은 수없이 생산됐다. 국영방송사인 NHK에서도 ‘결정판 태평양전쟁 전사(全史)’라는 다큐멘터리를 발표했다.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이 다큐물의 결론은 ‘군부의 무모함에 따른 국민의 처참한 희생’으로 귀결된다.

이 전쟁이 일본국민들에게도 이렇게 참혹하게 남아 있는데 식민지였던 한국인들에게는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영화 ‘동주’는 윤동주 시인과 함께 윤 시인의 고종사촌인 송몽규도 조명한다. 최남선과 이광수 같은 조선의 명사들이 친일로 기울었을 때도 조선 청년들은 일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저항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

학병으로 끌려가서도 탈출을 감행해 광복군에 가담한 이들도 있었다. 전 고려대 총장을 지냈던 김준엽 선생과 유신정권 하에서 의문사를 당한 장준하 선생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일본군에서 탈출한 조선인 청년들이 천신만고 끝에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찾아갔던 회고담도 남아 있다. 청년들은 임정 청사에 게양된 태극기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임정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은 적 치하에서 일본글로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임에도 여전히 불타고 있는 이들의 애국심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형극(荊棘)의 길을 피하지 않았던 기개와 정신은 우리에게 남겨진 유산임에 틀림 없다.

기미독립선언서는 일본의 반문명적 침탈행위를 문명주의적 입장에서 준엄하게 꾸짖는 것이 골자다. 97년 전 이 땅의 백성들은 이 꾸짖음의 대열에 분연히 합류했던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영화 ‘동주’와 ‘귀향’에 보내는 성원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강귀일 취재2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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