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특별근무… 아쉬움 대신 책임감으로
명절 특별근무… 아쉬움 대신 책임감으로
  • 강은정 기자
  • 승인 2016.02.04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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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획] 타인의 고향길을 달리는 사람들

“시골 길이여, 날 집으로 데려다 줘요(Country Roads, take me home)/ 내가 속해 있는 그 곳으로(To the place I belong)/ 웨스트 버지니아, 산골 아낙네(West Virginia, mountain momma)/ 날 집으로 데려다 줘요, 시골 길이여(Take me home, country roads)” 존 덴버가 1961년 발표한 곡 ‘Take Me Home Country Road(날 고향으로 데려다주오)’의 한 구절이다. 누구에게나 그리운 곳 고향, 그 곳으로 가는 길을 돕는 이른바 ‘귀향 도우미’들은 다른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귀향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랜다. 명절마다 버스로, 기차로 혹은 배나 비행기로 타인의 고향길을 달리는 사람들, 그들에게 귀향길은 어떤 의미일까.

 

▲ 박상해 기사 "귀성객 향수를 전달하는 배달부"

◇경남고속 박상해 기사= 울산-동서울 구간을 운행하는 경남고속 박상해(57) 기사는 이번 설에도 역시 운전대를 잡을 예정이다. 벌써 20년 가까이 명절 특별근무를 했기에 이제는 아쉬운 마음도 덜하다.

박 기사는 버스 승차장에서 선물 꾸러미를 한아름 안고 고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들뜬 표정을 보며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랜다.

“몇 년 전 추석 연휴 마지막날 동서울에서 만삭의 임산부를 태워 울산으로 오고 있었는데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죠. 갑자기 진통이 시작됐고 저나 승객들이나 당황했어요. 우선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게소에 차를 세운 뒤 마주 오는 우리 회사 버스에 임산부를 옮겨 태워 서울 병원으로 이송했죠. 서울에 근무하는 남편을 보고 울산으로 돌아오는 새댁이었는데 하마터면 버스에서 아기를 낳을 뻔 했죠.”

요즘엔 외국인 근로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박 기사는 서툰 영어를, 외국인 근로자들은 서툰 한국어를 섞어가며 애환을 나눈다고 했다.

“명절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날이지만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가장 외로운 날이기도 하죠. 저와 서툴게 대화를 나누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그런 사람들이죠.”

박 기사는 “동남아 사람이나 연변 사람이나 고향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곳이더라”며 “그들의 고향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덩달아 고향 모습이 그려지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 신길동 홍어골목으로 유명한 동네가 고향인 그는 “서울을 떠나온지 30년이 넘어간다. 어릴적 5.16 비행장 근처에서 팽이치기 하던 기억, 여의도에 땅콩밭이 가득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이제는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고향길도 못 찾아갈 지경”이라며 웃었다.

박 기사는 “나는 사람들의 향수(鄕愁)를 전달하는 일종의 배달부다”며 “이번 설 명절에도 배달사고가 나지 않도록 그리운 고향길로 안전하게 모시겠다”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 KTX 강성수 기장 "승객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운행"

◇코레일 강성수 기장= “30여년째 명절을 제대로 쉬어본 적 없네요. 올해도 열차 안에서 설을 맞이하게 생겼습니다.”

33년차 기관사로 일하는 강성수(53) 기장은 설날인 9일 오전 9시 부산에서 울산을 거쳐 서울로 가는 KTX 열차편을 맡아 현장을 지킨다. 서울에 오전 11시 반께 도착하면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그날 오후 7시 15분 다시 부산행 열차를 운행해야한다. 다음날인 10일도 근무 스케줄로 짜여져 있어 고향 갈 생각은 엄두도 못낸다.

강 기장은 “설은 우리 같은 기장(기관사)에게 평범한 날과 똑같다”고 말했다.

순서표에 따라 운행이 결정되기 때문에 기관사들에게 명절 근무는 ‘복불복’이다.

“운이 좋으면 명절 근무를 피해가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죠. 명절때 열차를 증편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열차편이 늘어 거의 모든 기장들이 일을 하게 됩니다.”

전남 나주가 고향인 그는 부모님께도,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는 “명절때 마다 일을 하느라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스럽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하다”며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가족들도 이해 해 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무사고 200만km라는 위업을 달성한 강 기장. 200만km는 지구를 50바퀴 돌 수 있고, 부산∼서울을 약 2천500번 왕복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그는 국민의 철도라는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갖고 30년이 넘는 기간 단 한건의 사고도 없이 무사고 200만km를 달성했다.

강 기장은 “명절 때 양손가득 선물을 들고 열차를 오르내리는 승객과 역에서 고향으로 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승객들을 보면 부러울때도 있다”며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 못하지만 1천명이 넘는 승객들이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열차를 운행하겠다”고 웃어 보였다. 글=강은정·윤왕근 기자·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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