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품격을 만드는 세상
커피 한 잔의 품격을 만드는 세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2.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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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 하실래요?” 한 남자가 쭈뼛거리며 다가와 말을 겁니다. 오래전부터 처음 만난 이성과의 차 한 잔은 새로운 인연을 열어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제가 커피 맛있게 끓이는 집을 아는데…” 뭐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분말 원두에 고온, 고압으로 커피 원액을 추출하는 방식인 에스프레소가 국내에 보급된 것은 1980년대 말 이후이며, 일반인들의 관심이 증가한 것은 ‘스타벅스’가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처음으로 문을 연 이후라고 합니다. ‘바리스타’라는 생소한 직업이 직업군을 만든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딜 가나 커피전문점들이 즐비합니다. 참 빨리도 변하는 세상입니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 고종 19년 때인 1895년의 일입니다. 그 후 3.1 운동 직후인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커피를 파는 다방들이 생겨나 손님들을 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이 어느 정도 커피를 마실까요?

2013년 질병관리본부가 조사한 바로는 1주일에 보통 12.3회 커피를 마시는데 2위인 배추김치 11.8회, 4위인 쌀밥 7회보다도 더 높은 1위 음식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4조 원대의 커피시장을 만들었고 커피믹스 형태로 60%를 소비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세계 역사로 볼 때는 1000년 무렵, 아랍 지방에서 커피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하여 이집트와 페르시아로 확산되었고, 서구에서 커피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17세기 들어와 아랍 상인들과 교류가 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커피는 1615년에 처음 베네치아에 상륙했으며, 1616년에는 런던, 1644년에는 프랑스 마르세유에 전파되었고, 1654년에는 마르세유 최초의 카페, 즉 ‘모임의 집’이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다른 지중해 연안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커피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영국이나 러시아에서는 오히려 동양의 차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처음에는 정신을 맑게 하고 울화증, 현기증, 무력증을 해소하고 기억력을 촉진시키는 의학치료제였던 차가 영국에 도입된 것은 1669년이었으며, 이후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 국민이 가장 즐겨 마시는 음료수가 되었습니다.

이 차를 좋아하는 영국인의 습성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만듭니다. 1773년 12월 16일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이 보스턴 항구에 정박해 있던 조세에 반대하던 동인도회사의 선박에 실린 차 상자를 바닷물 속에 던져 버립니다. 이 ‘보스턴 차’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됩니다. 이처럼 기호식품인 차 하나가 끼친 영향력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내에 초빙된 유명한 외국 바리스타는 커피에 대한 철학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나의 커피 사랑을 돌아보면 여행과도 같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 여행은 계속될 듯싶다. … 그렇게 커피를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커피가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곳이 커피가 재배된 농장이든, 운송되는 순간이든, 그것이 바로 커피가 주는 즐거움인 것이다.” 이 바리스타의 말처럼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은 맛을 음미하는 것 이상의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장 비싼 커피가 맛있고 품격 있다는 환상은 ‘스타벅스’를 번창하게 만들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 켈시 티머먼이 지은 <식탁위의 세상, -나는 음식에서 삶을 배웠다->에는 스타벅스의 실체를 다음과 같이 폭로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기업은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스타벅스는 ‘스타벅스 콜롬비아 로스트’를 홍보하면서 해발 2km의 고산지대, 언제라도 폭발할 것 같은 화산지대에서 소중한 붉은 열매를 미식가의 완벽한 커피로 키우고 있다며 자사의 고집스러운 철학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저자가 만난 콜롬비아의 스타벅스 현지 협력업체에 따르면, 스타벅스 콜롬비아 로스트는 100% 콜롬비아산이 아니다. 콜롬비아에서는 단맛이 나는 아라비카만 재배되기 때문에 쓴맛이 나는 로부스타 커피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기호에 맞게’ 혼합한다는 것이었다. 또 스타벅스는 고급스러운 이름과 높은 가격을 붙인 원두를 ‘깨끗한 물’, ‘철저한 환경 보존 농법으로 재배’한다고 칭송했지만 에티오피아의 그 농장은 강에서 말 사체 썩는 것 같은 악취가 나고, 걸쭉한 물질이 잔뜩 떠다녔다. 이 폭로가 있기 전까지 스타벅스 관계자가 이 농장을 방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농약과 플랜테이션 농장, 저장과 유통의 혁신 덕분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산지의 다양한 먹거리들을 비싸지 않은 값에 먹게 된 대신 우리 입으로 무엇이 들어가는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차 문화는 ‘바리스타’에 다 넘겨주고 원재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생활에 물들여져 버렸습니다. 편하고 값싼 한 봉지의 커피 속에는 깊은 우물과 같아 실체를 알 수 없는 세상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동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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