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시간 거슬러 고즈넉함에 머물다
500년 시간 거슬러 고즈넉함에 머물다
  • 최인식 기자
  • 승인 2016.01.0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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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경주 양동 민속마을’
양지 바른 낮은 언덕 위
기와·초가집 130여채 보존
마을 전체 ‘지붕 없는 박물관’
▲ 들판에서 바라본 양동마을 전경. 따뜻한 정감이 흐르는 언덕 위에 기와집이 있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초가집이 자리잡고 있다.

낮은 언덕 위로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져 조선시대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따뜻한 정감이 흐른다. 양지 바른 곳에 위치한 경주 안강평야 끝자락에 있는 경주 양동 민속마을이 그런 곳이다.

양동마을은 조선 시대 양반들이 살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통마을이 있다. 조선 중기 이후 사대부들이 살던 고택과 초가집 130여 채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당시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모여 살고 있다. 양동마을은 본래 350여 가호에 달했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절반 넘게 손상됐지만 폐허가 된 자리에 건축허가가 나지 않는 바람에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았다.

▲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 세워진 휘호석.

양동마을은 전체가 중요민속자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보 283호인 통감속편, 보물 411호인 무첨당, 보물 442호 관가정, 보물 1216호 손소영정을 비롯해 중요민속자료 23호인 서백당 등 중요민속자료 12점과 손소선생분재기 등 도지정문화재 7점이 있다.

201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앞서 1993년에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방문하기도 했다.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나즈막한 언덕에 오르면 기와집의 대표격인 관가정(觀稼亭)이 보인다. 월성 손씨 종갓집이다. 집과 정자를 겸한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이다.

안채에 들어가면 마루 시렁 위에 수십 개의 상이 놓여있다. 그만큼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뒤뜰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향나무가 있다. 향나무가 대문짝에 닿도록 집을 설계한 멋스러움이 돋보인다.

관가정을 내려와 조금만 걷다보면 서백당(書百堂)과 마주한다. 우재 손중돈과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집이다. 손중돈은 도승지를 지낸 세조 때 인물이다. 이언적의 외삼촌이기도하다. 이언적은 명종 때 이조·예조·형조 판서 등을 지냈다.

월성 손씨 종택에서 동네 입구 쪽으로 나오면 이언적이 살았다는 무첨당(無?堂)이 눈에 들어온다.

무첨당은 독특하게 둥근 기둥을 사용했다. 궁궐이나 사찰, 관청과 같은 공공기관에만 사용하는 둥근 기둥을 개인 저택용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양동마을에 얽힌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다. 전통마을이라는 공간이 시간의 틈새를 메워준다.

▲ 조선 초기 대학자인 손소의 아들 손중돈이 지은 관가정(觀稼亭).

양동마을은 1458년 손소가 양동마을에 들어가 서백당이라는 집을 지으며 시작된 500년이 넘는 이야기를 품은 마을이다. 집과 길들이 언덕 위 골짜기 안에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박혀 있다는 곳이다.

마을 북쪽으로는 설창산, 남쪽에는 약 100m 높이의 성주봉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양동천이 흐른다. 서쪽 산 넘어에는 양동마을의 경제적 토대였던 안강평야가 펼쳐져 있다. 마을은 안계(安溪) 시내를 경계로 동서로는 하촌(下村)과 상촌(上村), 남북으로는 남촌과 북촌의 4개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손씨와 이씨 가문은 각각 서로 다른 골짜기에 자신들의 종가와 서당, 정자 건물을 두고 있다. 신분 차이에 따라 지형이 높은 곳에 양반 가옥이 위치하고 낮은 곳에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 가옥을 에워싸는 형태로 형성돼 있다.

글·사진=최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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