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의 겨울나기
‘산지니’의 겨울나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1.03 2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라도라 지리산으로 꿩 사냥을 나간다/ 지리산을 넘어 무등산을 지나/ 나주 금성산 당도하니/ 까투리 한 마리 푸드득 하니/ 매방울이 덜렁 후여 후여 어허/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민요 ‘까투리 사냥’)
 
매사냥에서 쫓기는 장끼는 위급한 나머지 덤불에 처박혀 머리만 숨기고 꼬리를 미처 감출 수 없다. 장닭도 한참을 쫓아다니면 꿩과 다르지 않게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를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라 말한다. 현재 울산에 자주 출몰하는 참매 때문에 삼호대숲에 잠자리를 정한 꿩과 떼까마귀 신세가 그렇다. 낮에는 주행성 맹금류 포식자 참매에게 눈치봐야 하고, 밤에는 야행성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에게 잡히지 않아야 되기 때문이다.
 
‘매를 꿩으로 보았다’는 속담은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잘못 보았다는 말이다. ‘꿩 잡는 게 매’ 라는 말은 꿩을 야무지게 사냥하는 전문가 참매를 부각시킨 말이다. 매가 빈번하게 비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일상에서 매와 사람이 매우 친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매는 먹이를 찢어먹기 쉽게 부리 끝이 굽어져있는 사나운 새다. 육식을 하는 사나운 새 수리부엉이, 참매, 황조롱이, 새호리기 등과 함께 맹금류로 분류된다. 맹금류는 끝이 구부러진 부리, 날카로운 긴 발톱, 예리한 눈 등이 특징이다. 예리한 눈에 포착된 피식자(被食者=먹잇감)는 이미 반쯤은 희생당한 셈이다. 날카로운 긴 발톱은 피식자의 몸통을 파고들어 단말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끝이 구부러진 부리에 뜯기는 선혈의 살점은 보기조차 섬뜩하다. 자연생태계에는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잡아먹힌다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한다. 맹금류는 개체수의 조절, 노쇠한 자연도태 개체의 처리 등 자연의 먹이사슬 섭리로 살아가지만 피식자의 입장에서 보면 타도의 대상이기도 하다.   
 
겨울철이 되니 울산의 창공에 겨울 철새인 산진이의 출현이 잦다. ‘산진이’ 또는 ‘산지니’는 2년생 이상인 성조 참매의 우리식 이름이다. ‘산진이(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라는 말은 모두 매의 다른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포식자는 살기 위해 피식자의 월동 경로를 따라 함께 이동한다. 산진이도 살기위해 먹이의 이동에 동참한다. 참매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 남부를 비롯한 동남아시아권에서 겨울을 보낸다. 
 
2016년 1월 1일 울산의 일출 시각은 07시 32분이었다. 떼까마귀는 일출 39분 전인 6시 53분경에 이소(離巢)를 시작했다. 태화강 건너 삼호대숲 맞은편 중구 쪽 필드에서 오전 7시 10분경 참매가 떼까마귀를 포식하는 흔치 않는 장면이 관찰된다.  
 
보통 맑은 일 때는 떼까마귀가 처음 보금자리를 떠난 지 10분이 지나면 대부분 이소가 마무리된다. 그 이후론 간헐적으로 한두 마리 혹은 서너 마리 정도가 이소를 한다. 무리와 함께 이소하지 못하고 늦게 이소하는 개체는 대부분 쇠약하거나 늙어서 자연사 대상에 포함된다. 포식자는 개체와 시간을 기다리며 피식자를 골라 낚아채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날, 떼까마귀의 이소가 끝날 무렵 수천 마리쯤으로 추산되는 떼까마귀 무리가 에어쇼에서 비행기가 수직으로 급강하하듯 되풀이해서 모여드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육안으로는 다소 먼 거리여서 재빨리 망원경으로 확인한 결과 뒤늦게 이소하는 떼까마귀 한 마리를 참매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오르더니 두 발로 피식자의 몸통을 움켜쥐는 게 아닌가. 그런 후 잽싸게 키 작은 덤불 사이로 피하는가 싶더니 두 발로 번갈아가며 피식자의 숨통을 짓누르는 것이었다. 
 
참매의 이러한 행동은 비명을 못 지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비명 소리나 퍼드덕거리는 날갯짓 소리는 무리를 자극해 집단 추격의 빌미를 제공하고 이는 포식자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무리지은 떼까마귀는 공중에서만 몇 차례 배회할 뿐 더 이상 접근하지는 않았다. 참매의 은폐 기술이 떼까마귀 무리를 진정시킨 결과였고, 참으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참매는 20분 이상 그 자리에서 주위를 경계하며 떼까마귀 무리가 완전히 흩어지기를 기다라는 듯이 보였다. 혹시 현장을 촬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차를 몰아 현장을 찾았다. 참매의 시야는 과연 넓었다. 살금살금 다가가는 필자를 발견하고는 눈 깜짝할 사이 축 처진 먹이를 낚아챈 채 가까운 은행나무 가지로 날아가 앉았다. 흔하지 않은 현장 경험이었다. 현장감 있는 강의 자료와 경험을 축적한 셈이다. 
 
사람이나 산진이는 먹지 않으면 죽는다. 흔희 ‘먹기 위해 산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오히려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이 코끝 찡하고 설득력 있게 들린다. 매사냥은 수리과에 속하는 참매를 길들인 ‘봉받이’ 즉 응사(鷹師)가 겨울철 꿩, 토끼 등을 사냥하도록 부리는 일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 시대 만주 지방에서 시작돼 삼국,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매를 이용한 사냥법은 인류의 출현 이래 가장 오래된 수렵술이다. 전북 진안에도 수 천년 동안 이어온 매사냥의 전통이 남아있어 유네스코가 이를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무릇 생명 있는 자는 항상 의식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진실을 산진이와 떼까마귀를 통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