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통역관으로, 교사로, 창고업자로
제46화 통역관으로, 교사로, 창고업자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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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창고업 되살리기 위해 팔 걷어 가업 전념키 위해 교직 사퇴하고 작업 시작
학교운영이 제자리를 잡고, 나의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게 되면서 한창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은행으로부터 부채상환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채가 많은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이자가 붙어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나 있었던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에 문외한이었던 것을 직접 겪게 된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집안 사정을 등한시 했다는 자책과 함께 기울대로 기울어진 창고업을 되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가업에 전념하기 위해 교직을 사퇴하고, 그동안 형성된 인맥을 총동원하여 창고운영재개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울산읍장과 금융조합(현 농협)장을 만나 창고 운영에 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전매청 울산지청장을 만나기도 하며 여러 방면으로 창고를 재가동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인맥을 통한 청탁은 어려운 길을 쉽게 돌아가게 하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경우가 많다. 울산의 유지들을 모두 만나서 창고운영계획을 설명하고 자문을 구한 끝에 창고는 다시 문을 열었다. 의사가 될 사람이 선생이 되었다가 이제는 창고업자가 된 것이다.

전매청의 소금 가마니가 가득 실린 차들이 우리 집 창고를 드나들기 시작했고, 농협의 나락가마니도 창고를 채웠다.

거미줄이 걸려있던 창고에 사람들이 오고가자 집 안팎에서 활기가 돌았고, 은행의 부채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동생들의 학비와 가족의 생계비가 어려움 없이 조달되자 막혀있던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부채에 대한 중압감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식구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진 것이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내가 창고지기를 하면서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훌륭한 의사가 되고자한 일생의 목표와 현재 처해있는 상황과의 거리감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다가 하루빨리 내 본업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였다.

그렇다고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처지에서 당장 창고운영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적당한 관리자를 물색하던 중, 지인으로부터 믿을 만한 사람을 소개 받아 창고를 맡겼다. 창고운영과 가족 생계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나는 울산성당의 김재석 주임신부의 소개로 부산 초량에 있던 성분도 병원에서 소아과 과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성분도병원은 천주교 교단에서 운영하는 종합병원으로 각 과별로 진료부가 나뉘어 있었고 운영진 대부분이 신부와 수녀님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임상경험이 적은 내가 종합병원의 제1소아과 과장으로 임명된 것은 김재석 신부님의 도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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