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잘데없는 말이 쓸데 있는 이유
쓰잘데없는 말이 쓸데 있는 이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2.2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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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긍정적이고 평범한 것이라도 적용대상에 따라 강한 부정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우리네 관념 속에 ‘아주 나쁜 것’ 쯤으로 인식되어 있는 ‘사이비(似而非)’라는 단어가 그렇다. ‘사이비 교주’, ‘사이비 기자’, ‘사이비 종교’ 등 부정적 표현에 주로 사용되는 탓이지만 본래의 뜻은 다르다.

‘사시이비(似是而非)’의 준말인 ‘사이비’의 본디 개념은 ‘겉으로는 같게 보이나 실상은 다른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별이동류(別異同類)’를 들 수 있다. 즉 ‘다른 것은 다르고, 같은 것은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요즘 무용이든 국악이든 공연이 봇물처럼 쏟아져 자주 공연장을 찾게 된다. 메르스 여파로 많은 공연이 연말로 미루어지다 보니 댐이 방류되듯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무용인과 국악인은 사이비다’라는 표현은 관점에 따라 강한 부정으로 느껴질지 모르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무용인은 춤이 중심이고 국악인은 음악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공연에서 제각기 다른 두 가지 이상이 서로 번갈아가며 연희되는 ‘크로스오버(Cross Over)’는 중심이 서로 다른 장르가 한데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성질이 다른 금속을 녹여 하나로 만드는 ‘융합’과는 차원이 다르다. 차제에 공연장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소고(小鼓)춤’과 ‘버꾸춤’, ‘살풀이’와 ‘해원무’, 장구춤과 설장구, 양반춤과 한량춤, 제금과 바라 등을 용례 삼아 각각의 특징을 살펴보고 서로 ‘사이비’임을 말해 보고자 한다.  소고춤은 작은 북 즉 소고(小鼓)를 지물 삼아 추는 춤이다. 주로 여성 무용인이 부드럽게 추는 연무(軟舞)로 복식은 치마저고리이다. 버꾸춤의 ‘버꾸’는 소고보다 조금 더 큰 북이다. 주로 풍물에서 남성이 추는 건무(健舞)다. 소고춤이 안방용이라면 버꾸춤은 마당용이다.
소고춤 하면 안채봉(1920-1999)의 소고춤이 생각난다. 작은 체구에 소고를 잡고 소고채와 함께 바닥을 치고 소고를 치면서 현란한 장단으로 휘몰아칠 때면 이런 신명이 따로 없다. 버꾸춤은 어릴 때 동네 풍물패에서 자주 본 춤이다. 어느 지역이든 지신밟기에서는 으레 버꾸춤 잘 추는 어른이 끼어있기 마련이다. 

살풀이 혹은 ‘살풀이춤’은 의미적 접근보다 현상적 표현의 춤 이름이다. ‘살’은 푸는 것이 아니라 막는 것이고, 망자를 위한 춤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한 춤이라는 점에서 의식적 춤이라기보다 차라리 예술적 춤이다. 해원무는 불가 ‘재’ 의식의 ‘해원결 진언’(=원수로 맺힌 원망하는 마음을 풀어주는 진언)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이는 용어로 망자의 원결을 풀어주는 의식인 진언(眞言)과 작법(作法)으로 나타나 작법 중심의 춤임을 알 수 있다.
장구춤은 무용인이 주로 치마저고리 복식에 춤과 장구장단을 적절하게 혼합하여 추는 여성 춤이다. 실내에서 주로 추기 때문에 장구채만 지물(持物=손에 지니고 있는 물건)로 삼는다. 장단도 굿거리장단 중심이다. 설장구는 풍물패에서 주로 활용되며 현장이라는 점에서 궁채까지 잡는다. 이는 실내가 아닌 야외라는 환경에서 소리를 크게 울리는 방법이다. 요즘은 무용인이 추는 장구춤이 풍물가락 전체를 이루어 이름만 장구춤이지 설장구와 다를 바 없다.

한량춤은 남성 무용인의 연무 춤이다. 물론 한량춤과 한량무가 사이비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량무는 독무로 한 손에만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부채를 지물로 활용한다. 양반춤은 남성 무용인의 건무 춤이다. 오광대 혹은 야류에 등장하는 양반의 행동에서 심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왼손에는 긴 담뱃대를, 오른손에는 큰 부채를 지물로 삼는다. 양반춤과 한량춤은 본래 남성의 대표적이고 씩씩한 건무였는데 한량춤은 연무로 변화되어 아쉬움이 있다. 김덕명(1924-2015)의 정형화된 한량무와 양반춤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건무(健舞)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제금(提金)은 ‘자바라’의 잘못이라고 하지만 재금(齋金)으로 적는 것이 적절하다. 제금은 불가에서 사용되는 바라가 무속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잘못 전해진 것으로 짐작된다. 절에서는 금속으로 된 북을 ‘금고(金鼓)’라 부른다. 재금과 바라는 다 같이 금속성 타악기다. 제금이라는 용어는 주로 강신무 혹은 세습무의 ‘잽이’가 악기로 사용되는 무속 도구다. 반면 바라는 티베트 불교 등에서 불구로 사용되는 법물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승려가 재 의식에서 바라작법 불구로 사용하는 작법 지물이다.

용례를 살펴본 결과 소고춤, 살풀이, 장구춤, 한량춤은 주로 무용인이 전문으로 연희하고 버꾸춤, 해원무, 설장구, 양반춤은 주로 국악인이 전문으로 연희했다. 나머지 제금은 강신무 혹은 세습무의 악기로 사용된다. 바라는 불교 수행자인 승려가 천도재에서 작법의 도구로 사용하는 지물이다.

무릇 다른 것은 다를수록, 같은 것은 심화시킬수록 가치가 있다. 거의 같고 조금 다르다는 대동소이(大同小異)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즘은 무용인인지 국악인인지, 분명한 사이비를 찾기가 힘들다. 무용인이 무용을 심화시키기보다 국악에 기웃거리고, 국악인 역시 무용인의 춤을 흉내 내기에 급급한 듯하다. 장르를 구별해 놓았는데도 크로스오버를 잘못 이해하여 이것도 저것도 아닌 ‘술에 술탄 듯 물에 물 탄 듯’ 특징이 없으니 한심스럽다. 남성 무용인은 남성적 건무가 중심이고, 여성 무용인은 연무가 중심임을 이해하고 서로가 어울려 조화를 이룰 때라야 지역 예술은 독창적일 수가 있다.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마음이 많으면 번잡스러움도 많아진다는 ‘기심화역심(機心禍亦深)’이라는 말이 생각나 이만 줄이고자 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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