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다음날 파업벌인 노조
상견례 다음날 파업벌인 노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2.1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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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현대차 노조가 민노총 총파업에 참여하면서 임단협 연내타결을 기대하던 조합원들의 희망과 분위기 조성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동안 상급단체의 각종 정치파업에 노조간부만 참여한 경우는 왕왕 있었지만, 조합원 전체가 참여한 파업은 2008년 윤해모 집행부 시절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민노총 총파업 이후 7년만이다. 박유기 신임 지부장은 2006년 민노총 산하 산별노조 가입을 주도했던 인물로 그해 비정규직 법안 반대를 위한 파업 등 총 12차례 정치파업에 참여했던 강성인물이다. 그동안 일각에서 우려했던 박유기 지부장의 투쟁성향도 옛 그대로 건재(?)함이 입증됐다. 전임 집행부로부터 바통을 이어 받은 지 1주일도 채 안 돼 교섭과 전혀 무관한 정치파업을 강행했으니 그도 그럴 일이다.

현대차 노사가 임단협 단체교섭을 놓고 연내타결이냐 해를 넘기느냐하는 중차대한 기로에 서있는 지금, 현대차 노조의 이번 정치파업 참여는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것 같다. 바둑으로 치자면 일종의 패착이다. 다시 말해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개선이나 임금인상과 같은 처우문제가 아닌, 민노총의 대정부 투쟁에 발맞춘 정치파업에 현대차노조가 참가한 것이다. 이번 정치파업에는 민노총 소속 주요 사업장 대부분 불참했거나 간부파업으로 대체했다. 이에 반해 현대차노조는 한상균 민노총 노조위원장이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최근 구속되면서 사회적 여론도 냉랭한 상황에서 파업을 강행해 스스로의 입지를 깎아 내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울러 파업의 목적이 정당했다 하더라도 수단은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노조 집행부는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 노조 지부장이 연내타결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만큼 협상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도 연내타결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명분도 미약한 정치파업을 강행한 것은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이해 당사자인 조합원은 물론, 정년퇴직 예정자, 협력업체 근로자 등 수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 속에 모든 시선이 집중돼 있는 중요한 시기에 교섭의 계속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파업 참여는 더욱 그러하다. 어찌됐든 이번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조합원과 회사, 애꿎은 협력업체까지 고스란히 돌아가게 됐다.

설상가상 노조 집행부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나흘간 예정돼 있는 민노총 총파업에도 참여할 것으로 보여 연말 현대차 노사관계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회사는 노사 상견례가 끝나자마자 노조가 파업을 결정한 것은 노사 신뢰관계에 근간을 무너뜨리는 처사라며 이번 파업에 대해 철저히 법적책임을 묻고 파업참가자에 대해서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언제까지 관용과 이해로 노조를 끌어안고 갈 수는 없음을 강조한 대목이다.

일본, 독일, 미국 등 선진자동차 업계가 이제는 현대차에 대해 전혀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 된지 오래다. 연봉 1억원을 받고 국내 최고수준의 근로복지혜택을 받으면서도 임금을 더 올려달라는 현대차 노조는 올 연말에 정년퇴직하는 500여명의 동료 조합원들의 목소리와 회사의 경영환경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로지 상급단체의 대정부 투쟁과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만 몰두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엇이 진정 조합원을 위한 일인지,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시기에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귀족노조’ ‘황제노조’ ‘배부른 노조’ 등 현대차노조에 대한 숱한 수식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대차 노조는 한번쯤 고민해보기 바란다.

<이주복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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