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교통사고’ 막는 버드세이버
‘하늘교통사고’ 막는 버드세이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2.1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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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연합뉴스 기자가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울산 발(發)로 올렸다. ‘새는 유리창에 포유류는 차에’라는 제목을 달고 ‘유리창에 부딪혀 다친 팔색조’ 사진도 올렸다. 울산시설공단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관계자의 말을 빌려 “올 들어 9월 말까지 울산에서 숨진 야생동물이 한 달 평균 64마리나 된다”고 전했다.

종류별로는 조류가 74.6%(1천2건), 포유류가 24.6%(330건)를 차지했다. 조류 사고의 원인은 건물유리창이나 전선과의 충돌이 354건으로 가장 많았다. 숨진 조류 중에는 하늘다람쥐, 수리부엉이, 솔부엉이, 소쩍새, 새매 같은 천연기념물 겸 멸종위기종도 수십 마리 있었다.

포유류는 ‘생태통로’라는 구조수단이라도 있지만 하늘을 나는 조류는 사정이 달랐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버드세이버(Bird Saver)’라는 스티커다. 독수리, 매 같은 맹금류를 무서워하는 새들의 습성을 이용한 고안이다. 새들이 건물유리창이나 투명방음벽에 비친 하늘, 숲, 나무를 실제로 착각하고 부딪히지 않도록 맹금류의 그림자를 그려 넣었다. 연구 결과, 스티커는 새들이 ‘버드스트라이크(Bird Strike)’로 숨지는 사고를 70% 정도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다.

‘버드스트라이크’ 얘기를 처음 들은 때는 1979년 겨울이었다. 이 무렵 부산 해운대 해변에는 피서용 고층 아파트 서너 채가 있었고, 이곳으로 날아들거나 베란다에 둥지를 트는 새도 있었다.

바로 집 없는 비둘기였고, 사고는 겨울에 더 많았다. 다 자란 비둘기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거나 베란다 둥지 속의 갓 낳은 새끼가 추위로 얼어 죽기까지 한다는 사실이 주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비둘기들이 따뜻하고 안전하게 겨울을 나게 할 수는 없을까?” 당시 풋내기 기자였던 필자는 궁리 끝에 아이디어 한 가지를 떠올렸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행정기관(당시 해운대출장소)을 먼저 설득한 다음 의도적으로 만든 기사를 신문에 실었다. “해운대 주민과 상가연합회, 행정당국이 삼위일체가 되어 비둘기 보호에 앞장서기로 했다”는 내용으로…. 기사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해운대출장소가 부산기계공고에 ‘인공새집’(Nest Box) 제작을 의뢰한 것.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무렵, 해운대해수욕장 일원에는 번듯한 ‘비둘기아파트’ 세 채가 차례로 준공·입주식을 갖고 새 식구들을 받아들였다.

한국의 ‘버드세이버 운동’은 4년 전 한국조류보호협회가 처음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년 후인 2013년 겨울, 서울시는 국립산림과학원, 서울그린트러스트와 함께 ‘도시에 새를 가까이’ 행사를 열고 ‘도심 속 조류 보호’ 캠페인에 뛰어든다. 같은 해 6월, 코레일은 춘천시 강촌역 주변 투명방음벽에 버드세이버를 설치한다.

지난해 7월 창원시 의창구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내세우며 봉림동 아파트 주변 투명방음벽에 버드세이버 40장을 갖다 붙인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아직 깜깜한 밤중이다. “투명방음벽에 버드세이버를 설치해 달라”는 입주민들의 요구를 거절한 아파트 시공사도 있었다. “효과가 검증된 적 없고, 법적 의무사항도 아니다”는 이유에서였다.

울산의 버드세이버 운동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울산생명의숲’이 지난 1월부터 캠페인에 나섰지만 성과는 기대 밖이다. 자발적 설치 사례는 중구 남외동 아이파크 근처 투명방음벽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윤 석 사무국장은 새해 1월을 잔뜩 벼른다. 울산지방경찰청이 적극 호응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혁신도시 내 공공기관, 그리고 울산아파트연합회 관계자도 만나 설득할 참이다.

울산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관계자는 “‘하늘의 교통사고’를 막자”며 동참을 권유한다. “새가 강하게 부딪혀 유리창이 깨지면 사람도 다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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