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여행하는 즐거움
자전거로 여행하는 즐거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2.1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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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출퇴근을 몇번 시도는 해 보았지만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날씨가 변화무쌍하면 퇴근이 걱정이었고, 근무 중 출장 가야할 일이 생기면 택시를 이용해야 되니 그것도 부담이었다. 또 너무 덥거나 하면 땀범벅이 되어 민망스러웠고, 한겨울 살을 에는 바람을 맞고 달리면 감기몸살도 각오해야 했었다.

두 발로 걸어서 태화강변 선바위를 돌아 나오는 코스를 몇번이나 다녔지만 그 이상 다니기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적당한 자전거를 한 대 사리라 몇달 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가볍고 성능 좋은 자전거들은 넘치지만 합리적인 가격대의 자전거를 구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몇달을 이리저리 뒤진 끝에 바퀴가 좀 작고 접을 수 있는 자전거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결심을 굳혔다. 차로 출근하면 20분이고 자전거로 출근하면 40분 정도이니 그것도 적당했다.

막히는 도로에 비해 확 뚫린 자전거길은 일상적인 출근길에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이제 ‘시간이 없어 운동할 수 없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따로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으니 한마디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였다. 게다가 차량 연료비가 굳었고, 술이라도 한잔 걸치려면 대리운전비 부담도 없어졌다. 처음에는 골목길에서 차와 섞이면 불안 불안했지만 점차 요령이 생겨 차와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지난 주말. ‘한달에 한번 정도 습관처럼 가는 산을 탈까?’ 하다가 아예 자전거 여행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최근에 읽은 ‘천년고도를 걷는 즐거움’ 이란 책에 매료되어 국정화 논란에 역사에 대한 관심도 생긴지라 용기가 난 것이었다. 태화강역에서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역무원은 접을 수 있으면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선덕여왕릉에 대한 부분을 다시 읽었다. 경주는 차로 다니기엔 유적이 오밀조밀하게 몰려있고 걸어 다니기엔 좀 벅찬 장소이기에 자전거가 딱 안성맞춤이다 싶었다. 경주에 자전거가 왜 그리 많은지 알 것도 같았다.

경주역에서 내려 시장통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고 페달을 밟았다. 첨성대가 멀리 보이기에 잠깐 들렀다. 널따란 반월성 숲 앞 들판에 저 멀리 경주 산 능선과 대능원에 있는 여러 능들의 곡선이 조화를 이루고 그 앞에 선 두 그루 감나무도 능선을 닮아 있었다.

경주박물관을 지나서 농로를 지나 마을을 지나치는데 곳곳에 오래된 비석도 있고 마을 중간에 절도 있었다. 경주는 일상의 공간이 문화유적과 같이 살아가는 지역 같았다. 차로 다니면 들어올 일이 없는 길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에 도착했다. 경주에는 남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승냥이가 엎드린 모양이라는 ‘낭산’이 있었다. 어느 날 여왕이 신하를 불러 “내가 죽으면 도리천(?利天)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이는 낭산의 남쪽에 있다”고 하였다. 이후 왕이 죽은 뒤 신하들은 왕을 낭산 남쪽에 장사지냈다.

이후 문무왕대에 이르러 선덕여왕의 무덤 아래 사천왕사를 세웠다. 이는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는 불경의 내용이 실현된 것이었다. 신라인은 이 산을 불교 수미산이라 여겼다고 하는데 선덕여왕의 예지력의 설화를 담고 있다.

능으로 들어가는 길은 소나무 숲이었다. 길바닥은 소나무 갈잎들이 깔려 있어 예를 갖춰 놓은 듯했다. 구불구불하게 자연스러움 그대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은 삼국 중 유일하게 여왕을, 그것도 3명이나 배출한 신라인들의 남녀평등과 열린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중년여성으로 여왕이 된 선덕여왕은 김춘추,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기틀을 닦는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매혹적인 중년여성이 갖는 리더십은 훨씬 포용력이 넘치고 부드러웠을 것이다.

능은 마치 젖가슴처럼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웬 중년여성이 능의 잔디를 어루만지며 탑돌이처럼 돌고 있었다. 당시 여왕을 흠모하는 백성이 많았고 그 중에서 지귀(志鬼)는 특별한지라 여왕이 행차한다는 영묘사에서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여왕은 이를 보고 그의 가슴 위에 팔찌를 놓고 떠났단다. 잠에서 깨어 지귀가 이를 알고는 마음에서 불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여왕이 백성을 얼마나 인자하게 아끼고 사랑했는지 지귀의 설화를 통해 알 수 있다. 갑자기 선덕여왕이 그리워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아니면 눈이 쏟아져 하얗게 덮이면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울산도, 경주도 자전거길이 다 갖춰져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려는 마음을 누가 먼저 먹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자동차로 쉽게 가서 여느 관광지처럼 그냥 둘러보고 오는 여행이었다면 이렇게 살갑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동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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