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파리채를 들었다
오늘도 나는 파리채를 들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0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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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쌍둥이 아들 녀석들이 잠자기 전 서로 자리다툼이다. 넓은 거실에 이불을 깔자 두 명이 서로 자리를 다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다. 한 아이가 발에 차여 울며 엄마를 부른다. 가만히 두려했지만 엄살쟁이가 더 크
“엄마 빨래 3개 남았는데 다 널 때까지 해결해라…”

여전하다 … 어느새 내 손에는 파리채가 들려있었다.

“안되겠다. 둘 다 일어나라. 서로 양보 못하겠다면 둘 다 너희 방으로 가라. 무릎 꿇고 두 손 무릎에! 뭘 잘못했는지 반성해라. 잠 안 재워 줄 테다.”

한 아이는 입을 닫고 찡그리고 있고 한 아이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나는 못 들은 체 하고 나와 버렸다. 잠시 후, 조용해서 들어가 보니 둘 다 꿇어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우습기도 하고… 다시 이불을 반으로 나누어 경계선을 지어주며

“각자 넘어오지 않는 선에서 편하게 눕기, 실시!”

이번엔 아무 다툼 없이 누워있는데 표정을 보니 아이들 마음 속은 아직 아닌 것 같다. 엄마의 강제집행(?) 앞에 억지로 맞추고 있는 것이다. (하략)

형제간에 싸움이 생겨 시끄럽게 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위의 어머니처럼 싸움을 말리거나 야단을 쳐 문제를 해결하려한다. 어느 때는 큰 아이를 야단치고, 어느 때는 작은 아이를 야단치다가 어느 한 쪽의 편을 드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싶어 둘 다 벌을 세우거나 나무란다. 부모가 이렇게 ‘심판관’ 역할을 하게 되면 싸움은 끝날 수 있으나 아이들의 자율성이 줄어들고, 부모의 지지를 받지 못한 한 아이는 상처를 받게 된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더 마음이 가는 아이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투면,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마음이 더 가는 아이의 편을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수가 많다. 이럴 경우에 부모의 지지를 받지 못한 아이는 상처를 받는다.

자신이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는 좌절감은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으로 이어져,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미지로 아이의 마음속에 내재화 된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져서 무기력하고 우울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기도하고 어떤 경우는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분노감이 세상으로 향해, 공격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도 한다.

자녀들이 싸울 경우 부모가 꼭 지켜야 할 한 가지는, 그 상황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저런, 형(동생)이 너를 힘들게 해서 짜증이 났구나’ 정도의 반응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면서 중립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후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 할 경우는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아이들끼리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가족회의나 가족대화를 통해서 함께 해결방안을 찾아가도록 돕는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아이들에게 잘못할 때도 있고 자녀들을 불공평하게 대할 때도 있다. 부모 역할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자신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위의 글에서처럼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이러저러하게 행동하고 있는 자신을 늘 바라보고 챙기며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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