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高馬肥 (천고마비)
天高馬肥 (천고마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1.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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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 는 뜻으로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두심언의 시에서 유래된 말이다. 두심언(杜審言)은 양양 출신으로 자가 필간(必簡)이며, 중국 삼국시대 말기 위나라 사마염(司馬炎)이 삼국을 통일하고 진(晉)나라를 세우는 데 공이 많은 두예(杜預)의 후손으로, 성당(唐)시대 시성으로 추앙받은 두보(杜甫)의 조부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중국의 북방에는 유목생활을 하는 흉노족(匈奴族)이 있었는데, 이들은 넓은 초원지대를 전전하며 말을 기르고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말을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하고 특히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솜씨는 가히 귀신과도 같았다 한다.

그들이 말을 기르는 데 있어서 특이한 것이 있었다. 봄에서 여름을 지나 이른 가을까지 푸른 초원에다 말을 방목하여 기르는 사실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방목된 말들은 푸른 초원에서 마음대로 달리면서 스스로 풀을 뜯고 살을 찌우고 단련하게 된다. 그런 뒤 가을에 접어들어 하늘이 청명해지게 될 즈음이면 말들의 근육이 강철같이 단단하게 형성되어 민첩성과 기동성이 하늘을 나는 것과 같아 이른바 ‘천마(天馬)’라 이르게 된다.

이 시기에 이르러 흉노족들은 한겨울을 나기 위한 양식의 비축이 부족할 때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거두어들인 말을 이용하여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내려와 식량을 약탈해 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는 그곳에 거주하는 정착민들이 일 년 내내 농사지은 식량을 뺏겨야만 하는 수난의 시기인 것이다. 이를 두고 한서(漢書)에서는 흉노추(匈奴秋)라 기록하고 있다.

이때 두심언은 흉노의 침략을 대비하여 북방으로 파견되어 현지 방어에 전념하고 있던 친구 소미도(蘇味道)를 염려하면서 이 시를 남겼다. 그 내용을 보자.

설정요성락(雪淨妖星落) 구름이 맑고 요사한 별 떨어지니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 하늘은 높고 요새의 말은 살찐다.

마안웅검동(馬鞍雄劍動) 이젠 말안장에 기대어 칼을 빼려 하겠구나

요필우서비(搖筆羽書飛) 그러는 친구가 염려되어 편지 띄워 보낸다.

흔히들 가을 하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표현으로 풍요롭고 여유로운 뜻으로 미화하여 계절의 왕으로 칭하고 있다. 당시 중국 북방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극한의 위기가 다가오는 폭풍의 전야와도 같은 초긴장의 순간이었다. 그러므로 가을을 표현할 때 ‘천고마비(天高馬肥)’라 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지금 우리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넉넉한 가을철을 맞이하고 있지만, 우리의 국내외 사정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적으로는 가까스로 다가오고 있는 세계경제 불황의 신호 속에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찬반이 양립되어 극한의 대치를 이루어 국론의 분열을 넘어 국정을 혼미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외적으로는 한반도 주변의 아세안 해양의 재해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팽팽한 대립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 두 거대 국가의 틈바구니에 서 있는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왠지 풍요로운 천고마비의 가을날이 으스스한 공포의 전율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의 상황에서 국민을 이끌어 다가올 위기에 대처해야할 정치인들은 지금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가? 천고마비를 오직 풍요로만 생각하고 위기를 예측 못하는 어리석음처럼 국정을 놓고, 각자 무리들의 당리당략을 위해 국론의 분열을 획책하여 국력을 소진시키고 나라를 혼란하게 만드는 처사야말로, 국민 모두를 나락으로 몰아넣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노동휘 성균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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