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독감
마음의 독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1.0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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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이 지났다. 이십사절기의 하나로 상강(霜降)과 소설(小雪) 사이에 들어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세상은 아직 가을이지만, 겨울의 기운이 서서히 고개를 들이밀 것이다. 가을과 겨울의 밀고 당기는 싸움이 시작되면서, 저녁이 빨리 오고 아침은 더디 올 것이다.

일조량이 급격히 떨어지는 요즘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이른바 ‘계절성 우울증’이다. 늦가을부터 서서히 고개를 든다는 이 독감 바이러스(?)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는 자살을 놓고 찬반양론이 벌어지는 대목이 나온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산간 마을을 찾았다가 로테라는 여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베르테르, 그리고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 그 둘은 격론을 벌인다. 결국 로테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실연당한 베르테르는 정신적 고통과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알베르트에게 빌린 권총으로 자살한다.

흔히 ‘마음의 독감’이라고도 하는 우울증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특히 일조량이 크게 줄어드는 늦가을부터 자주 발생하므로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기온도 갈수록 낮아져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나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 인종, 지위, 성별을 떠나 누구에게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방치하면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질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데 통계상 33분마다 1명씩 사망하고 있으며, 특히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OECD 평균치의 4배나 된다고 하니 가슴 아픈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삶을 포기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입을 모은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우울증을, ‘기분 저하, 의욕과 흥미 상실, 죄의식, 무가치감, 수면장애, 식욕장애, 집중력 저하, 에너지 저하를 보이며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주는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을 느끼거나 단순히 마음이 나약해지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우울증과 관련이 있는 호르몬은 세로토닌이다. 이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뇌 속 물질로,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신경계가 불균형하고 감정이 불안해진다. 세로토닌을 행복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일조량이 크게 줄면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생겨 숙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는 늘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는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우울증이 감지되었다면 우선 햇볕 아래 있는 시간을 늘려줘야 한다. 햇볕은 우울증을 극복하고 기분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햇볕을 쬐면 세로토닌이 원활하게 분비돼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기분이 우울하다고 집에만 있는 건 절대 금물이다. 활동량이 줄어들다 보면 무력감과 외로움에 우울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맑은 날, 산책을 꾸준히 하고 야외 활동량을 늘려야 한다. 다행히도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초기 완쾌율이 70~80%에 이른다고 하니 당사자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우울증이 약물로 치료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우울증이 더 이상 정신적 분야만의 질병이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에 나온 항우울제들은 부작용이 매우 낮다는 희소식도 들리고 있다. 지금 누군가가 삶의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웅크리며 힘들어 하고 있다면, 훌훌 털어낸 뒤 밝고 따뜻한 햇볕과 만나시기 바란다. 어느 시인은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고 했다. 행여 ‘보약’과도 같은 늦가을볕을 두고 그렇게 노래한 것은 아닐까.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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