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상]뮤지컬 ‘외솔’ 유감
[기자단상]뮤지컬 ‘외솔’ 유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1.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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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울산시가 제작한 뮤지컬 ‘외솔’이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초연됐다. 작품은 울산 출신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1894~1970)의 삶을 주제로 했다. 두 차례의 공연은 객석을 가득 채우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울산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탄생한 셈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초연인 만큼 발견된 미비점을 보완하며 완성도를 높여가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공연 제작진과 출연진의 열정에 대해서는 박수를 아끼고 싶지 않다. 다만 극본의 구성에 대해서는 지적할 사항이 적지 않다.

작품은 외솔이라는 실존인물의 삶을 소재로 했다. 따라서 극적 요소를 위한 설정은 필요하다 하더라도 사실(史實)만큼은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작품에서는 을사늑약(1905)이후 광복(1945)까지 일제의 조선 통치 책임자인 통감과 총독을 ‘사이토’라는 가상의 인물로 단일화했다. 이는 작품의 흐름을 간결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 이외의 사실은 실제와 달라져서는 안 될 것이다.

첫째 을사늑약 이후 한일합방(1910)까지 존재했던 통감부와 그 이후에 설치됐던 조선총독부를 구분하지 못했다. 헤이그특사사건(1907)을 묘사하던 장면에서 사이토와 함께 조선관복을 입고 등장하는 이완용은 학부대신이라는 직함으로 일제가 각급학교에서 조선어사용을 금지하는 제3차 조선교육령을 공포(1938)할 때도 그대로 등장한다. 통감부와는 다르게 총독부에서는 조선인 고위관료가 없었다. 총독부에는 학부대신이 있을 수도 없고 실제로 이완용은 1926년에 사망했다.

일제는 모두 네 차례의 조선교육령을 공포했다. 일제가 학교에서 조선어 사용을 완전히 금지한 것은 제3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하면서 부터이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일제강점이 시작되면서부터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1911년 공포된 제1차 조선교육령을 재현하는 장면에서는 ‘모든 학교에서는 일본인 교사가 가르친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는 근거가 없다. 실제로 외솔은 1919년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동래고등보통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했다.

작품에서 외솔이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할 때 신입생인 윤동주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라는 시를 읊으며 등장한다. 외솔도 “서시의 시인 윤동주”라며 반긴다. 이 장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윤동주는 1938년 연희전문에 입학하면서 외솔과 만나게 되고 그의 강의도 한 학기 수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곧 외솔이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실직하면서 윤동주는 외솔의 강의를 더 들을 수 없었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준비하면서 그 동안 써뒀던 시들을 모아 시집으로 꾸몄다. 이때 시집의 서문 격으로 맨 앞에 써둔 시가 ‘서시’이다 이 시집은 윤동주가 옥사하고 해방을 맞아 1948년에 출간되면서 세상에 알려진다. 물론 ‘서시’는 윤동주의 대표시로 자리를 잡았다.

작품에서 윤동주가 외솔의 가르침을 받아 그 영향으로 한글로 주옥같은 시들을 쓴 것으로 묘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솔과 윤동주가 만나는 시점에서 이미 ‘서시’가 언급된다면 윤동주는 외솔의 가르침을 받기 전에 이미 ‘서시’를 발표한 시인이어서 굳이 작품에 윤동주를 등장시킬 이유가 모호해진다.

작품은 표절 의혹도 남겼다. 작품에서 외솔이 재판을 받는 장면에 나오는 ‘징역을 언도한다’라는 넘버가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제작돼 올해 발표된 뮤지컬 ‘영웅’에 등장하는 음악 ‘누가 죄인인가’와 가사의 구성이 흡사하다.

모두 세심하게 살펴 다듬어야 할 부분들이다.

<강귀일 취재2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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