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호박
늙은 호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2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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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의 식품코너 한쪽에서 ‘늙은 호박’이란 팻말을 보면서 아주 잠시잠깐 생각이 머문 적이 있었다. 잘 익은 큰 호박을 조각조각 소포장하여 판매하는 것이었는데 과연 식물에게 늙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일까 싶었다.

새삼 늙은 호박이란 표현에 많은 생각이 꽂힌다. 그것은 사람의 나이 들어감에 대한 사유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늙어서 좋은 건 호박밖에 없다고도 하고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다는 말로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때는 호박꽃도 꽂이냐는 늙고 못생긴 여자를 일컫는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고 ‘삶은 호박에 말뚝 박기’라는 말처럼 가치 없이 쉬운 존재로도 표현된다.

사실 늙은 호박의 갈참나무등걸같이 울퉁불퉁한 외면을 보면서 눈이 치켜 올라가고 심술볼이 불룩한 놀부마누라의 얼굴이나 악처로 소문난 소크라테스의 처 크산티페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봐도 잘 여물고 익은 호박을 부를 이름이 달리 떠오르진 않지만, 자꾸 입속에서 되뇌다 보면 은근히 정감이 가고 푸근한 느낌이 든다.

늙었다는 건 잘 익었다는 것이고 잘 여물었다는 것이고 지난 시간만큼의 여유와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도 조금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남해 여행에서 돌아온 여동생이 해풍에 잘 익은 호박 몇 덩이를 사왔다. 그 중 하나는 익을 대로 익은데다 크기도 엄청나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등신불처럼 여름햇살을 견디며 익은 겉껍질은 마치 고목나무등걸 같았다.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이맘때쯤이면 엄마는 샛노란 호박죽을 끓이고 호박전을 부쳐 해마다 외할머니께 대접해드리는 걸 봐왔기 때문이다. 엄마는 음식 만들던 부엌살림살이를 헤쳐 널어 둔 채로 식기 전에 따뜻하게 드리고 싶어 뜨거운 채로 보자기에 싸서 한걸음에 달려가시곤 했다.

동생들과 호박을 반으로 갈라 호박죽과 호박전을 만들었다. 빻아온 쌀가루에 햇양대콩과 팥을 넣고 정성껏 만들었다. 샛노랗다 못해 주황빛으로 몽글거리며 잘 퍼진 호박죽과 말랑하고 달콤한 호박전을 두 분이서 맛있게도 드셨다. 가을햇살 아래 추석 이후 또 한 차례 부모님을 모시고 자매들과 어린 시절 추억 같은 하루를 보냈다.

늙는다는 건 어쩌면 슬픔이기도 하다. 호박씨처럼 일생의 많은 기억들을 꺼내보며 되새기며 세월을 견디고 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세월의 풍파를 이기며 여문 껍질 속에는 알알이 보석 같은 시간들과 들키지 않은 꿈들이 잘 익은 속살처럼 톡톡한 씨방처럼 자리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다시 쓰임 없이 그냥 버려진다 해도 사는 날까지의 기쁨이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되기도 할 것이다.

튼실한 호박씨를 버리기 아까우셨는지 아버지가 씨를 고르자 괜한 짓이라고 핀잔을 주는 엄마의 말속에 계절을 가르는 바람이 휙 지나간다.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루기 힘든 것이 진정 꿈은 아닐까. 당장 하루뿐인 오늘하루만의 꿈이라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애송이 풋호박의 풋내 나는 여린 맛을 잊은 건 아니지만 단내 나는 늙은 호박의 깊은 맛을 진정 알게 되는 나이, 삶의 정점이다.

<이정미 수필가·나래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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