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언-생태계의 모방 활용
쇄언-생태계의 모방 활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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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模倣)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것을 그대로 본떠서 만드는 것”이다. 춤을 예로 들면 양반춤, 학춤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생태계를 응용하거나 모방하는 행동과 도구는 의외로 다양하다. 모방의 조건은 필요성이 먼저일 것이다. 배는 물은 건너기 위해 만들었고, 비행기는 새처럼 날고 싶어서 발명했다.

높이 나는 새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조감도(鳥瞰圖)이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부감(俯瞰)이다. 독수리가 기류를 타고 빙빙 활강하는 것에 착안해 페어글라이딩 동호회가 형성됐다. 참새는 체구가 작아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앙증스럽고 귀엽다. 사람이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행동을 참새(雀)의 걸음에 비유해 ‘환희작약(歡喜雀躍)’이라 했다. ‘까치는 땅에서 두 발을 번갈아가며 걷거나 두 발을 모아서 종종거리며 뛰는 듯이 걷는다. 이러한 걸음걸이를 무용, 농악 등에 활용해 ‘까치걸음새’라 부른다.

양반의 걸음걸이는 어떠할까. 두루미의 걷는 모양을 보면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천천히 그리고 큰 보폭으로 걷는 두루미의 걸음을 모방한 것이 의젓한 양반의 ‘양반걸음’이 되었다.

부부금슬을 상징하는 새로는 기러기나 원앙을 활용한다. 생태계에서 암·수 중 어느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짝을 찾는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바람인데도 믿음이 오래되어서인지 기러기나 원앙은 지금까지 좋은 인식으로 남아있다. 특히 남자의 입장에서는 차마 따라죽지 못한 미망인이 재가하지 말고 혼자 늙어죽기를 바라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정약용의 경우는 다르다.〈목민심서>에서 ‘합독(合獨)’이라 하여 홀아비와 과부가 인생의 제자리를 찾도록 오히려 성혼(成婚)을 실천하는 것을 목민(牧民)의 덕목으로 제시한다.

송골매, 황조롱이 등 맹금류의 눈을 모방한 것이 사방을 두루 살피는 광각렌즈(廣角-lens)다. 물속에서 공중의 포식자를 인식하는 송사리, 붕어 등 물고기의 눈을 활용한 것이 어안렌즈(魚眼-lens)다. 수리부엉이는 눈동자가 커서 밤이라도 멀리 있거나 숨어있는 피식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를 망원경의 대물렌즈에 적용했고, 대물렌즈가 클수록 멀리 있는 물체가 가깝고 밝게 보인다.

두루미 암수가 울음으로 화답하는 부창부수(夫唱婦隨)는 하모니를 말한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요 교칠지심(膠漆之心)으로 살았기에 어려운 시절을 열심히 함께 노력한 아내를 ‘조강지처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이라고 했다.

원앙이 한 쌍이 항상 함께하는 것을 모방한 원앙금침(鴛鴦衾枕), 큰 날개로 너울너울 춤 잘 추는 학두루미의 날갯짓을 모방한 학춤, 양유(楊柳) 속을 드나들며 노래 잘하는 꾀꼬리의 앵가(鶯歌), 기쁨을 알려주는 까치의 희작(喜鵲), 어둠의 삿된 기운을 몰아낸다 하여 붙인 닭의 울음 계명(鷄鳴), 한평생 동행하는 기러기를 들고 장가가는 전안례(奠雁禮), 제비와 개구리의 울음소리에서 착안한 선비의 독서 분위기 등등 어느 하나 모방해서 활용하지 않은 것이 없다.

‘걷는 참새를 보면 대과(大科)한다’는 말은 참새는 날거나 폴짝폴짝 뛰지만 결코 걷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희귀한 일,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로 본 것이다. 무리지은 까마귀가 무질서하게 나는 모습에서 ‘오합지졸(烏合之卒)’이란 말이 생겼다.

라이트 형제는 나는 새를 관찰한 뒤 비행기를 창안했고, 돌고래가 물살을 가르며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물의 저항을 적게 받는 유선형(流線型)을 고안했다. 나비가 훨훨 나는 것을 보고 버터플라이(butterfly)형 수영 즉 접영(蝶泳) 종목을 도입했고, 돌고래의 헤엄치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배영(背泳) 종목을 추가했다.

치타가 사냥감을 잡기 위해 빨리 달리는 모습은 육상의 단거리 달리기를 연상시키고, 불곰의 싸움은 레슬링을 연상시키며, 캥거루의 싸움은 복싱과 킥복싱을 연상시킨다.

백조, 두루미, 기러기 등이 긴 목을 앞으로 쭉 뻗어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는 점에 착안해 양궁의 흔들림을 안정시켜주는 장치 스태빌라이저(stabilizer)를 개발했고, 골프채에서 샤프트(shaft)가 길면 비거리(飛距離)를 늘릴 수 있다 하여 1번 우드(Wood)에 적용했다.

물총새와 황조롱이, 벌새의 정지비행 즉 호버링(hovering)은 헬리콥터에 적용했다.

배추벌레, 자벌레, 청개구리의 보호색을 보고 은폐효과를 높이기 위해 개발한 것이 얼룩덜룩한 야전잠바였고, 표범의 얼룩무늬를 보고 ‘얼룩무늬 군복’을 만들어냈다.

두루미의 긴 목은 타워크레인으로, 박쥐나 돌고래의 반향정위(echolocation)는 음파탐지기 소나(sonar)로 발전했다. 철새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던 기술은 길 잃은 치매환자의 위치추적 시스템의 개발로 이어졌다.

식충(食蟲)식물의 생존전략인 끈끈이 물질에서 착안한 것이 ‘끈끈이 파리잡이’이고, 잽싸게 먹이를 잡는 사마귀의 앞다리 모양에서 당랑권법(螳螂拳法)이 창안되었다. 제비의 꼬리 모양에서 지휘자의 연미복(燕尾服)을 창안했고, 가야금 줄을 받치는 도구가 기러기 발가락과 비슷하다 하여 안족(雁足)이라 고 불렀다.

자연생태계에서 얻어낸 빅 데이터의 활용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거나 여유 있게도 해준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가치는 새삼스럽지가 않다.

※ ?言(쇄언)= ‘자질구레한 이야기’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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