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고흐처럼
행복한 고흐처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0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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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근방의 조용한 카페다. 한쪽 벽에 해바라기 한 다발을 수채화로 그린 액자 하나가 걸려있다. 해바라기의 색은 금색을 하고 있으니까 아마도 재물을 끌어들인다는 말이 있어 더욱 그럴 것이다. 유별나게 눈이 가는 그림 한 장이다.

그것은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로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유명한 ‘해바라기’라는 작품이다. 소크라테스의 얼굴을 닮은 우체부 조셉 룰랭 그림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의 많은 그림이 그러니 스트레스 속에 사는 우리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강한 색채, 이글거리는 화필의 힘이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직관하고 있으면 그 매력에 자꾸 빨려들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출신 고흐는 1888년 프랑스 남부에 있는 따뜻한 마을에 처음 도착한다. 아를르 (Arles)라는 해바라기가 지천으로 깔려있는 목가적인 마을이다. 우연히 들판에서 한 아이와 마주친다. 그 아이는 낯선 모습의 이방인 고흐를 보고 “아저씨는 누구세요?”라고 묻는다. “나는 화가인데 아름다운 이곳을 물어물어 찾아 왔지.” “화가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아, 화가란 이곳의 많은 해바라기나 사이프러스 나무나 사람들의 얼굴 등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그리는 사람이야!” 신기하게 느꼈는지 아이는 해바라기 꽃 한 다발을 따서 고흐에게 선물로 준다. “아저씨! 그럼, 이걸 좀 그려주세요!”라고 부탁한다. “너는 이름이 뭐냐?” “저는 카밀 룰랭이에요. 나이는 11살이고요. 저의 아버지 이름은 우체부 조셉 룰랭이에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럼 아저씨 집으로 놀러 가도 돼요?”…. 대화가 끝이 없다. 이렇게 둘은 하루가 멀게 친해진 것이다. 고흐는 아를르에서 14개월 동안 생활했는데 그의 인생에서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그의 전 생애에 걸쳐 그린 수많은 작품 중, 200점 이상의 유화와 100점 이상의 수채화와 소묘를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그려 후세 사람들에게 영원히 사랑을 받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듬해 짧은 생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이자 영혼의 예술가이다.

어느 해인가 퇴직하신 선배 교수가 하신 과찬의 말씀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름 아닌 필자의 졸저 일본어 머리말 문장 산책에 대하여 평하면서 “이번 저서는 내용이 특이하고 신선해서 좋아요. 대박 나세요!”라고 격려를 했다. 이 책은 듀이 10진 분류법에 의하여 대학도서관 서고에 있는 대표적인 머리말 문장을 채록하여 분석해 놓은 다섯 권으로 된 시리즈다. 만날 때마다 칭찬의 말씀을 들려주어 필자로서는 그야말로 드물게 느끼는 행복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달포 전 딸이 서울의 한 병원에서 조그마한 용종 수술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받는 일이라 본인도 놀라고 가족들도 걱정했다. 수술비용이 제법 나와 부모가 대신 지불하니 딸은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미안한 마음도 있고 고맙게 생각한 것인지 봉투에 현금을 넣어 주는 것이다. 그것도 겉봉투에 정서로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라고 격식을 차려서 말이다. 얼마 되지 않은 돈이지만 교통비에 보태어 쓰라는 것이다. 아직 독립을 하지 않은 딸이지만 부모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 무슨 날이면 빠짐없이 소액을 정서로 쓴 봉투에 넣어 보내는 습관이 있다. 진정으로 소소한 행복의 시간을 맛본다.

행복이란 마치 꿀벌이 꽃에서 조금씩 꿀을 따다 모으듯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곳곳에서 조금씩 맛보면서 사는 것이 아닐까? 어느 누구에게도 가장 행복한 시기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목표는 가장 행복한 시기를 맛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행복한 시기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행복하게 보낸 시기처럼 말이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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