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유감(遺憾)
반구대 유감(遺憾)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8.3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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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을철이면 몰라도 혹서, 혹한기에 2㎞ 남짓 더 되는 그 길을 걸어 올라 간다는 것은 무리다. 특히 자녀들과 함께 반구대 암각화를 찾는 외지인들은 여름, 겨울 방학시기에 많이 몰릴 텐데 나무 그늘 하나 없는 포장도로를 따라 한 여름 땡볕아래 30여분 이상 걷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당초 길을 닦을 때 이런 점을 고려치 않은 것은 큰 실수다.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 가면 듣던 바와 다른 것이 많아 실망스런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속 빈 강정’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요즘 자주 거론되고 있는 ‘암각화 보존방식’은 차치 하고라도 최근에 조성된 암각화 전시관 주변 환경은 오류투성이다.

우선 초입에 있는 주차장부터 문제다. 그렇게 협소한 면적에 도대체 ‘대형버스 몇 대를 주차시킬 계산’이었는지 발상자체가 우습다. 봄, 가을 행락 철에 단체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을 땐 대형버스를 이용할 텐데 어쩔 셈인지 속내를 모르겠다. 행여 그런 ‘대규모 방문은 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 어느 쪽이든 비난을 면키 어렵다.

주차장이 불편해서 암각화 전시관까지 승용차를 몰고 온 사람들 때문에 전시관 주변은 ‘소형차 주차장’이 돼 버렸다. 주차장에서 전시관까지 연결된 도로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일방통행인지 양방향인지 몰라 머뭇거리다 ‘눈치’로 밀고 올라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통행 안내 표지판도 없고 도로면에 표시된 것도 없어, 어설프게 앞차를 따라 가다보면 내려오는 차량과 부딪칠 듯 스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당초부터 이 길을 차량용 도로로 생각하고 건설했다면 ‘폭 조절’은 완전히 실패한 케이스다.

암각화 전시관에 도착하면 또 한 번 ‘실망’을 맛보게 된다. “암각화는 물에 잠겨 있어 직접 볼 수는 없고 전시관 안에 마련된 실시간 시뮬레이션은 볼 수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이 내방객 대부분을 씁쓸하게 한다. 지난 2003년 암각화 보존대책 연구용역이 발주된 이래 5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1년 중 7~8개월은 물속에 잠겨있다.

지금 당장 ‘암각화를 물에 잠기지 않게’ 해야 하는 이유는 보존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홍보적 차원에서 더욱 절실하다. 암각화 전시관이 개장 됐을 때 문전성시를 이루던 관광객이 요즘 뜸해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외래 관광객이 찾아와서 ‘실물은 보지 못하고 모형만 구경해야 한다’는 안내를 들으면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음’은 자명한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국내외 명소로 부상되기 위해선 근방에 있는 천전리 각석과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현재의 암각화만으로 관광명소가 되기엔 그 자체 규모가 너무 작고 단조롭다. 지금 보물 147호 천전리 각석은 허허 들판에 방치돼 있다. 오솔길을 따라가면 반구대 암각화와 불과10분 거리에 있는 이 보물은 그 가치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반구대로 올라가다 왼쪽으로 꺾어지면 천전리 각석으로 통하는 좁은 길이 하나있다. 그러나 직선거리인 이 오솔길은 잡목과 풀 더미로 덮여있어 사람들이 통행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 길이 개발, 확장돼야 양쪽의 선사유물이 상호 보완돼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현재는 되돌아 나와 지방 국도를 타고 천전리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니 타 지역에서 온 내방객들이 천전리 각석 존재자체를 모르는 수가 많다. 반구대 암각화 전시관만 돌아보고 가는 관람객들의 허전함을 메우는 길은 아무래도 천전리와 연결 짓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다.

수몰(水沒) 돼 있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못지않게 주변전체를 연계해 ‘명승지화’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지금도 해질녘 으스름 속에 묻혀있는 천전리 각석의 고독함이 느껴진다.

천전리 각석 없는 반구대 암각화는 항상 ‘미완성 작품’임을 천전리 계곡 물소리만이 웅변하고 있다.

/ 정종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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