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드디어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제42화 드디어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8.3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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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증’ 발급받고 감개무량해
목욕을 해도 이·서캐가 후드득 떨어져

며칠 만에 집 밖으로 나가보았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았고, 코끝에 닿는 바람은 평화로웠다. 같은 하늘 아래지만 북쪽에서 본 하늘과 서울에서 보는 하늘은 달라보였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낯빛도 확연히 달랐다.

가벼운 마음으로 동사무소를 찾아가 학생증으로 신원을 확인 시킨 뒤 ‘서울시민증’을 발급받아 한참 들여다보며 이제야 온전한 서울시민이 된 듯하여 감개무량했다. 작은 시민증 한장이 그 어떤 보물보다 값졌고, 든든했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궁리하며 해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주변이 캄캄해져서야 서둘러 집으로 왔다.

말없이 집을 나간 내가 해가 져도 오지 않자 걱정을 하며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의 애정 어린 잔소리가 고맙게 들렸고, 여태 애비를 기다리며 밥을 굶은 아이의 투정도 행복했다. 조촐한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워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평화로운 일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 밤 꿈을 꾸며 전쟁터를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은 다음 날 기억도 되지 않는 악몽으로 여전히 잠을 설치고 있었다.

집에 온지 며칠이 지났고 목욕을 여러 번 했는데도 머릿속이 계속 가려워 참빗으로 머리 밑까지 박박 빗어보니 이와 서캐가 후드득 떨어졌다. 어디서 하얀 가루약을 구해온 아내가 내 온몸에 가루약을 뿌리고 입었던 옷가지들도 하얀 가루약으로 범벅이 되게 하였다.

북쪽에서 입고 온 옷들은 이미 태워버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하얀 가루약은 ‘디디티’라고 부르는, 사람 몸에도 해로운 살충제였다. 당시 전국 국민학교, 중학교 학생은 학교에서 옷을 입은 채 옷 속으로 뿌려 넣었다.

신통하게도 가루범벅을 하고 난 후부터 온 몸에 들끓던 이와 서캐는 사라졌다. 지금도 나 때문에 온 가족이 하얀 가루를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전쟁 중에 퍼진 이와 서캐는 온 나라를 하얀 가루범벅으로 만들었다.

어느 날 울산에서 반가운 손님이 왔다. 아버지께서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오랜만에 뵙는 아버지는 예전의 당당한 모습을 잃고 기력이 약해져 있었다.

내 손을 잡고 눈물을 보이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버지의 야윈 손을 잡은 나도 눈물을 훔치며 큰 절을 올렸다. 살아 돌아와서 고맙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목이 메어왔고 진작 찾아뵙지 못하고 아버지를 서울까지 걸음하게 만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 온 고종 사촌 태윤 형의 말을 빌리면 울산의 우리 집에 국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국군 제23육군병원의 보급부대가 있었는데 부대장이 서울에 출장 간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께서 부대장에게 통사정을 하여 화물들 사이에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서울까지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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