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결단이 노사교섭보다 어려운 노조
노노결단이 노사교섭보다 어려운 노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9.17 2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6월 2일 상견례를 가진 현대차 임단협이 중대고비를 맞고 있다. 마치 ‘동족상잔’ 같은 제편 헐뜯기가 연출되고 있다. 이미 알려졌듯이 현대차의 올 협상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의제는 임금제도 개편이다. 소위 ‘신(新)통상임금제도’(신통제)로 불리는 새로운 임금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세월만 가면 자동적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를 폐지하려고 했으나 노조가 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기본틀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반면 복잡다단하기가 이를 데 없는 임금구조를 단순화하자는 데는 노조도 동의했다.

그런데 막바지로 향하던 교섭이 돌발상황을 맞은 것이다. 현 집행부와 대척점에 서 있는 현장조직들 때문이다. 똑 같은 금액이라도 이익보다는 손실에 더 민감한 게 사람심리다. 반대 조직들은 이를 잘 이용하고 있다. “신통제로 가면 이런저런 불이익이 온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뭐, 손해를 본다고?’ 당연히 조합원들의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이렇게 되면 반(反) 집행부 정서는 자연스레 형성된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원 찬반투표를 해도 통과를 자신할 수 없다. 실제로 이런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제조직들로서는 쾌재를 부를만 하다.

현대차가 2013년부터 심야근로를 없앤 주간연속2교대를 시행한 것은 산업계의 근로형태 변경에 큰 획을 그은 ‘대사건’이었다. 근로자들의 건강을 비롯한 삶의 질 향상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그리고 올 협상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신통제가 마련되면 선진 임금체계로 가는 또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다. 간간히 흘러나오는 신통제 내용을 보면 마치 고등수학을 대하는 것처럼 이해가 쉽지 않다. 그만큼 높은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수십년간 굳어온 기존 체계를 고치는 것이 쉬울 리 만무하다. 하지만 수당 종류만 해도 100가지가 넘을 정도로 비합리적인 부분이 많은 기존 임금체계를 두고 벌써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이 아니면 선뜻 손대기 힘들었다. 그리고 회사는 힘겹게 대안을 창안해 노조에 제시했다.

그렇다면 노조도 자기들 안(案)을 회사에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상호 의견교환을 통해 새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한데 앞서 말했듯이 일부 현장 조직들은 노동조합이 안(案)을 내는 것조차 극력 반대하고 있어 집행부 안은 아직 개봉도 못하고 있다. 한쪽에서 “장이야” 했는데 상대방은 입이 봉쇄된 꼴이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비난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조합원의 배신자”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하고 있다. 이름 석 자 가운데 글자만 뺀 다섯 명을 거론하며 “집권야욕에 불타고 있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이 노조 측 교섭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집행부의 안조차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자기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럴 바엔 차라리 교섭위원 자리를 내 놓은 게 순리고 떳떳한 처신이다.

협상이 종점으로 향하는 시점에 내부분열이나 다름없는 이런 행동을 두고 말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교섭이 끝난 직후 있을 차기 집행부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말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 집행부의 성과를 최대한 폄하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특히 “회사가 제시한 것만 잘 수용해도 기대 이상의 성과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반 집행부 입장에서는 속이 타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런 기막힌 일을 보면서 독안에 게가 힘겹게 기어오르는 데 다른 녀석이 뒷다리를 잡는 바람에 그 무게 때문에 함께 뒤로 떨어지는 것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딱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일이 반복되는 한 현대차 노동조합의 발전은 요원하다. 노사 간 교섭 보다 노노단결이 더 힘든 이런 기현상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주복편집국장 >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