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언(瑣言)- 현아의 ‘빨개요’
쇄언(瑣言)- 현아의 ‘빨개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9.1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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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여학생이 노래를 부르는데 언뜻 들어보니 ‘네모난’이라는 가사가 일정하게 반복된다. 불러서 물어보니 화이트라는 가수가 부른 ‘네모의 꿈’이란다. 가수 이름까지 거침없이 말하니 대견스럽다. 처음부터 불러달라고 부탁했더니 율동까지 하면서 들려준다. 좀 더 알려고 자료를 찾아보니 1990년대 중반에 발표된 유영석 작사, 작곡의 가요라고 한다. 초등학생 덕분에 이런 노래가 있는 줄 이제야 알았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각신문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이라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오빠생각을 부르고 자란 세대이다 보니 현대적 시의성이 있는 ‘네모의 꿈’ 가사는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현아의 ‘빨개요’라는 노래가 한동안 유행하여 요원의 불꽃처럼 번져간 적이 있었다. 자꾸만 듣게 되었다. 현아는 춤도 잘 추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what, 빨간 건 현아, 현아는 yeah’라는 후렴구의 반복성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붉은 꽃이 열흘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은 시들해졌다. 원숭이 엉덩이가 붉은 것은 사실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생리주기가 되면 붉게 부풀어 오른다. 생존전략이다.

이를 계기로 생각해 보았다. 환락가의 조명, 식육점의 조명, 신호등의 빨간 등, 축구의 레드카드, 연예인의 레드카펫, 자동차의 브레이크, 소방차의 붉은 도색, 붉은색의 적십자 등 일상생활 주변에는 의외로 붉은색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확장시켜 보면 쇠물닭, 뜸부기, 딱따구리, 크낙새, 홍방울새, 꿩, 붉은뺨가마우지 등 조류(鳥類)는 이마, 빰, 목덜미가 붉어 관심을 끈다. 특히 두루미는 이마가 붉어 단정학(丹頂鶴)이라 부른다. 크낙새 이마도 붉다. 따오기는 번식기가 되면 붉은 깃털이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에 ‘주로(朱鷺)’라 부른다. 번식기의 봄꿩은 여주의 속같이 붉다. 중국에서는 봉황을 붉다는 의미로 주작(朱雀)이라 부른다.

흑고니, 원앙, 혹부리오리, 붉은부리갈매기, 비오리, 검은머리물떼새, 호반새, 파랑새, 꾀꼬리, 붉은부리까마귀, 먹황새는 부리가 붉다. 장다리물떼새, 흰눈썹바다오리, 비둘기, 흰빰검둥오리는 다리가 붉다. 뻐꾸기새끼의 입속과 소쩍새의 입속은 붉다. 소쩍새를 귀촉도라고도 부른다.

귀촉도는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새다. 입속은 핏빛같이 붉다. 우는 모습에서 마치 피를 토하는 듯 보인다. 미당은 ‘귀촉도’에서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고 표현했다. 토한 피는 하얀 꽃잎에 뿌려져 진달래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화류(花類)에는 도화(桃花)가 붉으며, 능금의 ‘능’자는 붉다는 의미도 있다. 장미 하면 정열의 꽃으로 붉음을 연상시킨다.

동백, 꽈리, 백일홍, 칸나, 봉선화, 접시꽃, 나팔꽃, 사루비아(샐비어)의 꽃도 공통적으로 붉다. 익으면 붉어지는 것들의 대표적인 것은 사과, 고추, 단풍 등이 있는가 하면 우체통, 붉은 치마 홍상(紅裳), 붉나무, 젊은 얼굴 홍안(紅顔), 붉은 연꽃 홍연(紅蓮), 붉은 반점 홍역(紅疫), 빈손인 적수(赤手), 레드, 붉은 악마, 온수파이프, 토마토, 수행자의 홍가사(紅袈裟), 연지, 곤지, 홍의동녀(紅衣童女), 레드컬러, 레드튤립, 레드립스틱, 적외선 전구, 레드카펫, 빨간 집, 배롱나무, 백일홍, 붉은 해, 할미꽃, 화염(火焰), 앵두, 장닭의 볏, 선혈(鮮血), 모란, 명정(銘旌), 붉은 태양 적일(赤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골고루 풍부하게 나타나는 것도 붉은색이다. 갯벌의 귀염둥이 달랑게의 몸빛이 서서히 붉어지면 번식기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자극적인 말들을 들려주고 흥분을 전류계로 측정한 일이 있다고 한다. 키스(72.8=전류계의 지침), 사랑(59.5), 이혼(58.5), 피(45.3), 여자(40.3), 붉은색(38.0), 불(37.4) 등으로 나타났다. 역시 피, 불, 붉은색 등 붉은 빛은 흥분시켜 지침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화단 혹은 문간과 돌담 아래에 채송화·맨드라미·봉선화·과꽃·접시꽃 등을 심었다. 또한 우물가에 앵두나무를 심었고, 대문간에 대추나무를 심었고, 묘소에 배롱나무를 심었다. 이들의 공통적인 색깔 역시 붉은색이다. 붉은 빛은 사귀·악귀·병마·액마의 접근을 막을 뿐 아니라, 쫓아버리는 축귀(逐鬼) 역할도 한다고 믿었다. 동·식물이 붉은 것은 진화의 결과이겠지만 우리 선조는 가족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면서 붉은색을 활용하였다. 새삼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할 뿐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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