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9.0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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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9월 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2013년 기준으로 10만 명당 28.5명으로 불명예스러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매년 이때가 되면 정신보건사업 전문가로서 자살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작년 가을 우리 센터는 울산 북구지역에 자살예방과 생명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사업을 고심 중이었다. 이미 우리 센터는 자살예방 상담은 물론 관내 저수지에 자살 방지용 조형물을 설치하고 자살과 생명존중을 소재로 한 UCC 동영상 공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창작 뮤지컬 공연을 기획한 바 있다. 그래서 새롭고 참신한 사업 모델이 필요했다.

우리 센터의 일꾼 김은향 팀장은 새로운 사업 모델을 위해 직접 경기도의 한 지역을 찾아 자살예방 사업을 참관하고 왔다. 그곳에는 2011년부터 한국 자살예방협회와 생명보험 사회공헌 재단이 국내 농촌 지역에 ‘농약 보관함’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자살의 도구인 농약에 대한 접근도를 떨어뜨리고 정신건강 전문요원과 함께 농약을 반납하며 자연스럽게 정신건강에 대해 접근하자는 게 목적이다.

당시로서는 신선한 사업 모델이었으나 도시 지역인 울산 북구와는 사업 방향이 달랐다. 울산 북구 지역은 농약이 주된 자살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사업의 테마를 “죽음”이 아니라 “생명”으로 바꾸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상담하다 보면, 자살이라는 주제를 자주 만난다. 심각한 주제인 ‘자살’에 대한 면담은 이상하게도 ‘왜 살아야 하는가’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왜냐하면,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가 의사라면 그의 도움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자살을 생각하는 이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죽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다. 집에 아이가 있어 아이 때문에 죽을 수 없다. 그나마 자녀가 없는 집, 특히 독거 어르신들은 당신이 돌보고 있는 애완견이나 화초 때문에 죽지 못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과거의 마음 상처로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던 한 여대생은 태화강 다리에서 자살을 생각하다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찾았다. 처음에 의사는 ‘애완견’을 데리고 온 학생을 보고 ‘병원에 애완견을 데려오면 안 된다’는 말을 하려다가, ‘태화강 다리에서 뛰어내리지 못한 이유가 이 애완견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말도 알아들을 리 없는 애완견에게 ‘학생을 살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역주민들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살에 대한 경각심도 물론 중요하지만, 생명을 가꾸어보는 경험도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완견 혹은 화초를 길러보는 경험이 어떨까? 농약을 반납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처럼 화초를 길러보고 지역주민이 스스로 생명을 가꿔보는 경험 말이다. 울산북구 지역은 화훼단지가 있고 화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화초를 가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명존중 문화가 확산되지 않겠는가?

2014년 10월 29일 사업명은 “생생生生마을”, 울산광역시 북구 호계주공2단지에서 북구청장님을 비롯한 여러 귀빈들과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현판식을 가졌다.

이후 아파트단지 내의 모든 가정에 울산광역시 북구의 상징인 호접란을 배포하였다. 배포 당시 주민들은 그냥 호접란을 가져갈 수 없었다.

우선 호접란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작지만 소중한 생명의 보호자가 되기 위해 주민 스스로 생명존중을 다짐하는 서약서에 사인을 해야 자신의 호접란을 가져 갈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호접란에게 자신의 딸 이름을 붙여주고 우는 어머니도 볼 수 있었다.

지난 1년간 울산북구자살예방센터와 지역주민이 함께 노력하였고 바야흐로 2015년 10월 14일 ‘생생生生마을 음악회’가 열리게 된다. 이 날은 더 없이 소중한 축제의 날로 북구 호계주공2단지 지역 주민들은 아름답고 신나는 음악을 즐기며 지난 1년 당신들이 소중하게 길러온 호접란이 얼마나 잘 성장하였는지 서로에게 자랑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물론 생명을 키워온 ‘자신’의 소중함도 알게 될 것이다.

<이동현 울산시 북구 정신건강증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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